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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몸이 우리가 먹은 것들로 이뤄졌다면, 우리의 생각은 우리가 읽고 듣고 경험한 것들로 이뤄졌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의문이 들 것이다. 창조란 없다는 것이냐고 말이다. 그러나 우리가 배우고 익히고 경험한 것들을 몸안에서 결합하고 재생산하며 창조가 새로운 것을 내놓는 창조가 이뤄진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굳이 이런 글을 쓰는 이유가 무엇일지 의문이 들수 있다.
도대체 어떤 글과 기사를 읽는가. 교수님은 화가난 듯 강의실 연단에 서자마자 이 말부터 했다. 건강을 위해 좋은 음식을 먹어야 하는 것처럼 정신건강과 지능 향상을 위해선 좋은 글을 읽어야 한다. 그러기엔 너무 많은 좋지 못한 글들이 널려있다. 각종 음모론과 비논리적인 글들이 널려있는 것이다. 이런 글들 대개는 정치계가 뒤에 자리하고 있다. 그러나 공산주의 혁명도 결국에는 경제혁명이란 것을 알면, 정치적인 각종 쓰레기통 기사는 말그대로 중요한 기사가 아니다. 청담동 술자리 기사만 가지고도 얼마나 쓸모없는 시간을 보내며, 에너지를 낭비했는가. 탄핵도 그런 기사만을 가지고 할 수 있는게 아니다. 특히 탄핵을 한다면 지금 상황에서 탄핵이후 누가 집권할 건지 생각하면, 탄핵은 야당때문에 더 못하는 것이 된다. 대안이 없단 말이다. 대안없는 고갈형 기사는 이제 그만 읽기를 바란다.
은행에서는 내가 살아온 인생을 묻지 않았다. 오로지 내 통장에 매달 꽂히는 돈의 크기만을 놓고 따졌다. 마침내 그러기를 수십차례 시름시름 앓던 나는 정신과의원의 신세를 져야했다. 그런데 정신과의원에서도 지금 떨고 있소, 화가 치밀어 오른가요, 슬픕니까를 묻지 나의 살아온 인생을 묻지 않았다. 난 속으로 지금 나에게 약만 줄게 아니라 돈도 주쇼라는 말을 하고 있었다.
국가가 민중보다 먼저 존재한 것은 아니다. 역시 사회보다 국가가 먼저 존재한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국가가 좌파의 주장처럼 착취의 수단으로 만들어진 것도 아니다. 하고싶은 말이 많아 자꾸 말이 새어나가니 자르고 말한다면, 반국가 세력보다 더 위험한것은 반사회성을 보이는 사람들의 존재가 아닌지 묻고 싶은 것이다.
지방대를 살린다고 막대한 돈을 투자하는 것을 솔직히 난 좋아할 수가 없다. 많은 수험생들은 간판을 보고 지원하는데, 이름도 없는 지방대에 돈이 투입된다고 거기에 진학할거라는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를 난 모르겠다. 차리리 스카이대학의 정원을 왕창 늘려서 보다많은 학생들이 명문대 간판을 달게 하는게 더 나을지 모른다.
난 여름을 분노와 화의 계절이라하면 또다른 나는 여름을 열정의 계절이라고 한다. 난 가을을 우울과 고독의 계절이라면 또다른 나는 가을을 풍요의 계절이라고 한다. 난 겨울을 죽음과 한의 계절이라하면 또다른 나는 겨울을 쉼의 계절이라고 한다. 그런데 봄은 너나 나나 희망의 계절이라고 하길 바란다. 어느덧 가을이 다가왔다. 국민들의 분노는 마침내, 우울로 넘어가는 계절이 온 것이다. 그래도 파괴해야 한다. 교육을 파괴해서 교육 사다리를 다시 지어야 한다. 앞에서 로그값 계산법이라는 제하의 기사를 쓰니, 구글 검색어는 뒤에 헬스를 붙여야 기사 검색이 되고, 네이버에서는 수많은 로그값 계산법이라는 글들이 앞에 나와 히트를 못쳤다.
의대 증원을 찬성한 사람중에는, 의사들의 수입이 많은 것에 대해 시기나 질투심리도 있을 것이다. 그들은 과거에 수가를 인상시켜달라는 의사들의 주장에, 너희들은 2억원에서 3억원을 벌지 않느냐며 반대의견을 나타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수가가 낮은데, 왜 그렇게 돈을 많이 버는 걸까 생각해보았는가.
의료비보다 간병비가 더 문제다는 중증 환자 가족들은 말한다. 필자의 친지도 최근, 돌아가시기전 아버지의 간병비를 하루에 15만원씩 부담하므로 상당히 어려움을 겪었다. 그렇다면, 환자가 부담감으로 느끼는 만큼 간병 노동자들은 떼돈을 벌까. 그건 아니다. 간병 노동자들의 평균 수입은 (공치는 날도 감안해서) 일반 노동자의 평균 수입보다 많지 않은 것 같다. 이같은 문제는 간병노동자의 생산성이 낮기 떄문이다. 생산성이 낮은 가장 큰 이유는 규모의 경제 실패에 기인한다.
응급실 등 필수의료과에 의사들이 기피하는 이유가 수가가 낮은것만 문제가 아니라는 지적이 있다. 즉 의료분쟁에 책임이 너무 무겁다는 지적이다. 그런데, 그렇다고 사법부의 판결까지도 정치적인 영향을 미쳐야할까. 필자는 분쟁의 책임이 무겁다고 느끼는 것은 수가와 전혀 무관한 것이 아니라, 수가가 낮은데도 불구하고 분뱅의 책을 무겁게 한 것에 있다고 생각한다.
붉은 노을에 황홀해하는 중년 옆으로 지나가는 바람이 말한다. 저 붉은 노을이 지면 칠흙같은 어둠이 온다고. 황금빛 들판을 가로지르는 중년에게도 바람이 말한다. 저 들판이 갈아엎어지면, 한얀 눈이 소븍히 쌓이는 추운 겨울이 온다고. 인생의 황금기, 풍요로운 중년을 맞이한 부부에게도 바람은 말한다. 이제 은퇴하고 머리는 새하얗게 백발이 되고, 손과 얼굴은 주름이 가득한 노년이 찾아온다고. 중년 부부는 바람의 말에 조용히 눈을 감는다. 건국절 논란에 계엄령, 의대증원논란까지 지금 우리사회의 퇴행적인 모습은 저물어가는 석양에 바람소리와 같다. 그러나 우리는 생각하고 있다. 검사에 대한, 의사에 대한 사회 엘리트들, 부자들에 대한 열등의식과 시기도 분명 지금 이 사회를 읶르고 가는 원동력이며, 특히 일부 아스팔트 노인들을 비롯한 많은 낙오자들이 국가가 망했으면 하는 심리도 있다고 본다. 그러나 혁명은 파괴만이 아니라 긍적적인 희망을 담겨주는 것이다. 교육은 파괴되어야하지만, 분명 미래의 희망을 주는 파괴여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