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리가 아닌 힘 예컨대, 물리력을 동반한 권력과 자본력에 의해 나라를 다스리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권위란 논리에 의해 만들어져야 정상적이지, 권력이나 자본력에 의해 권위를 만들려면 권위주의적이 된다. 지금 여야, 극우건 극좌건, 사법 불신은 극에 달하고 있다. 그러나 자기에게 유리한 판결이 이뤄지면, 사법부를 칭찬하고 불리한 판결이 일어나면 사법부를 비난한다고 보지 말라. 사법부의 권위가 논리에 의해, 세워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현상이 심해진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희생양이 필요하다. 파산에 다가오자, 누군가 이 모든 문제의 원인을 뒤집어씌워 처벌을 해야 조금은 분노가 가라라앉을 듯하다. 그 누군가는 여당은 물론 야당도 포함해서 정치인과 언론에 성공한 사람으로 오르내리는 공인이였으면 하는 마음이다. 우리는 의사와 검사들에 질투감이 크다. 나는 이렇게 힘든데, 그들은 지배의 기쁨을 만끽하는 듯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기울어진 운동장 같은 현 시장상황에 대해 불만을 갖기 때문이다.
죽이는 구조조정을 하지 말고, 살리는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 피를 말리는 긴축 속에서 금융권의 수익은 커져가고, 상대적으로 불만이 증가한다. 그런데 필자의 한 지인은 보험대리점에 속해 보험영업을 하는데, 최근에는 은행 적금 상품을 팔기도 한다.
여야 모두 국민의 짐과 같다. 탄핵이니, 반대니 하는 집회 나갈 수 있다면, 아니 정치기사를 읽을 수 있는 사람은 여유가 있는 사람이다. 하루하루를 전쟁같이 살아가는 파산 직전의 삶들은 정말이지 피를 말린다. 그런데 이런 국민의 짐은 단 한순간이라도 찰라의 순간이라도 힘을 안들이고 들 수 있을까. 컵 위, 책받침 위에 있는 동전이 지속적으로 하방압력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느냐는 말이다.
이제 잔치는 끝났다. 빚으로 곱게 빚은 고층빌딩이며, 희황찬란한 도심의 빛들도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했다. 그들만의 리그에서 들러리는 결국 들러리일뿐. 완전히 뒤집어 엎지 않는 이상은 희망이 없다. 아 절망상태다. 그런데 사람들이 불가능하다고 하는 것에 도전하면 좀 나아질까. 행여나 하는 마음에 소수 생성 다항식은 만들수 없다는 학자들의 말에도 불구하고 쌍둥이 소수 생성 다항식을 만들어본다.
의약품이 식약처의 허가를 받고 출시되면, 어떤 식으로든지 보험에서 보장되어야하지 않을까. 그서이 보험당국의 이상적 목표, 모든 치료제는 보험으로 보장해줘야 한다에 맞는 것이다. 그러나 고가 신약의 경우, 보험당국에서도 급여를 해주기가 여간 부담스럽지 않다. 그래서 제안해본다. 보험등재 전이라도 보험상한가를 고시하하려말고, 전액이 아닌 일정 액을 보장해준다면 어떤가. 아니면 또는 병행해서 민간 보험사로부터 보장을 받도록 하는게 옳다.
하늘에서 돈이 비처럼 내려와, 할롈루야. 파산이 눈앞에 다가오자, 살아온 날들을 되돌아보게 된다. 그동안 보아오지 못한 다른 시각에서 나의 삶을 돌아보는 계기가 된다. 우리 사회는 죽음을 터부시하여 말도, 생각도 안하지만, 한번쯤은 자신의 죽음을 생각해 본다면, 그동안 가져왔던 세계관의 대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지도 모른다. 돈만 추구해왔던 삶이 죽을 때는 돈을 가져가지 못하기에 바뀔 수 있고, 그동안 가까운 사람의 잔소리에도 분노가 일었지만, 그런 잔소리까지 아름다움으로 기억될 지 모른다. 조금은 우울할 수도 있고, 불안해질 수도 있다. 하지만, 파산이나 죽음 전에 해보고 싶은 일들은 진짜 무엇이고, 쓰고자 하는 글은 어떤 글인지 생각해보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너무나 급박한 상황에 한방에 날릴 수 있는 글을 생각해보지만, 떠오르지 않는다. 그래서 써왔던 글이지만 작은 생각을 다듬어보는 차원에서 또 써본다.
정신질환이 치료되는 요소중에 하나로 신의 은총을 느꼈을 때라고 한다. 그런데 깊이 생각해보니, 신의 은총을 느낀다는 것, 그와 같은 것은 긍정적 충격을 계속 받을 때라고 생각한다. 필자는 의사가 아니어서 이런 글을 쓰는게 부담스럽지만, 지금같이 여야를 떠나 의심과 분노 등 부정적 감정이 넘치는 시기에서는 지속적인 긍정적 충격이 가해진다면, 치유된다고 생각한다.
교도소에서 성경책을 열심히 봤다는 말대신, 사회과학책을 보았다고 한다면. 아니 나아가서 자연과학책이나 논리학을 보았다면 얼마나 자랑스럽겠는가. 우리 사회는 힘이나 폭력대신 논리로 운영된다. 사람들은 돈을 빌리는 사람이 이자를 주어야 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데, 이 당연하다는 생각에는 논리가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법을 만들때도, 자본주의 논리속에서 만들어가는게 보통이다.
미쳐버릴 것 같다. 재정과 금융정책이 보완적으로 사용되어야 하나, 동시적으로 경쟁적으로 사용되어 숱한 사람들을 죽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작금의 구조조정은 살리는 것이 아니라 죽이는 구조조정이다. 필자도 코로나19 해제이후 더이상의 정부대출은 받지 못하고, 금리는 인상되어서 심각한 재정위기 봉착했다. 금융을 조이면, 확장 재정정책으로 숨통을 트여줬어야 한다는 것이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