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월 건정심에서 결정하려던 처리를 일시 보류했다. 지난 20일 열린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이하 건정심) 소위원회에서 약가제도 개선방안 안건이 삭제된 데 이어, 2월 건정심 상정조차 3월로 미뤄졌다. 이번 개편안은 희귀·중증질환 신약의 선등재 후평가(신속급여) 도입, ICER 임계값 상향, 약가유연계약제(이중가격제) 확대 등 그동안 다국적 제약업계가 줄기차게 요구해 온 민원사항을 집대성한 내용이었다.
매년 수십조 원의 건강보험 재정이 투입되는 의약품 구매 체계를 근본적으로 뒤흔드는 중차대한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제도 변화에 따른 재정 영향이나 환자 안전을 위한 사후 관리 방안에 대해 3달 넘게 구체적인 계획을 제시하지 못하고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번 안건 상정 보류는 당연한 결과이나, 일시적 보류로 순간의 위기만 모면하겠다는 단편적 대책이라면, 졸속 행정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는 없다.
정부가 추진하는 약가제도 개선안은 실질적인 환자의 의약품 접근권 개선보다는 효과가 불분명한 고가 약제의 남용을 부추기고, 수조 원의 건강보험 재정의 추가 부담을 가중시킬 위험이 크다. 게다가 다국적 제약기업의 독점적 지위를 공고히 해주는 이중가격제의 무분별한 확대는 국민건강보험 운영의 기본 원칙인 투명성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처사다. 보건복지부는 졸속적인 약가제도 개편 추진을 중단하고 보류된 시간 동안 신속히 사회적 논의 기구를 마련하고, 다음 최소한의 조치를 이행해야 한다.
첫째, 약가제도 개편안의 세부 내용 및 건강보험 재정 추계 자료를 전면 공개해야 한다.
현재 보건복지부가 추진하는 ‘선등재 후평가’ 방식은 신약의 신속 급여라는 ‘속도’만 강조할 뿐, 해당 약제가 실제 임상 현장에서 효과가 있는지, 가격은 적정한지에 대한 검증 기전이 사실상 전무하다. 효과가 검증되지 않은 고가 약제가 급여권에 진입한 이후 이를 제대로 통제하지 못한다면, 국민이 정당하게 사용해야 할 건강보험 재정은 단지 제약기업의 이윤을 채워주는 ‘용돈 주머니’로 전락할 것이다. 정부는 재정적 지속가능성에 대한 구체적인 근거를 먼저 제시해야 한다.
둘째, 시민사회와 가입자 단체가 참여하는 공개 공청회를 빠른 시일 내에 마련해야 한다.
이번 약가제도 개선방안은 지난해 11월 발표되기 전까지 철저히 베일에 가려져 있었으며, 건강보험의 주인인 국민과 가입자 단체와의 사회적 논의와 합의 과정은 완전히 생략되었다. 정부는 일부 환자단체와 제약업계의 목소리만 선택적으로 청취하며 밀실 논의를 이어왔다. 보건복지부는 폐쇄적인 의사결정 구조에서 벗어나,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의견이 반영될 수 있는 민주적인 논의의 장을 보장해야 한다.
이번 개편안은 신약 가격을 높이고, 제네릭(복제약) 가격은 낮추는 방식이다. 그러나 고가 신약에 대한 무분별한 약가 우대는 지속가능한 건강보험 재정 운영을 불가능하게 하며, 제네릭 정책 역시 단순한 가격 인하보다 과도한 사용량을 통제하는 것이 본질적인 해결책임에도 이에 대해서는 어떤 내용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제약기업 달래기에 급급해 국민의 건강권과 건강보험의 공공성을 희생시키는 무리한 제도 추진을 멈춰야 한다. 충분한 정보 공개와 공론화 과정이 결여된 정책 강행은 제도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리고 극심한 사회적 갈등을 초래할 뿐이다. 보건복지부는 지금이라도 ‘제약산업 육성’이라는 허울 좋은 명분 뒤에 숨지 말고, 진정으로 국민의 건강권과 건강보험의 지속가능성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약가 정책을 전면 재검토하라.
2026년 2월 24일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한국중증질환연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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