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의정협의체, 무엇을 위한 것인가? 지금 당장의 의료공백을 해소하고 환자중심의 의료체계로 나아가기 위한 대전환의 노력을 보이지 않는다면 여야의정협의체는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할 것이다.
지난 4일, 국민의힘 최고위원회의에서 한동훈 대표는 “오는 11일 여야의정협의체를 출범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9월 6일, 협의체 구성을 야당에 제안한 지 두 달 만에 협의체 정식 출범을 예고한 것이다. 한 대표는 “겨울이 오는 상황에서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생각하면 협의체 출범을 더는 미룰 수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실체 없는 협의체 출범 소식을 지켜보는 국민과 환자는 이미 인내심의 한계에 다다른지 오래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기다릴 것도, 기대할 것도 없는 여야의정협의체 출범 소식에 냉소를 감출 수 없다. 지난 9월 6일 여야의정협의체를 제안한 한동훈 대표는 현안 브리핑에서 “여야의정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의료현장의 진료서비스를 정상화하면서 의료개혁이 국민에게 도움이 되도록, 효율적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협의하고 의대정원 증원에 합리적 대안을 모색하는 협의체를 구성하자”고 말했다. 한 대표의 말대로라면 협의체는 의료현장 정상화, 의료개혁, 의대정원 증원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의제를 논하는 기구라는 뜻인데, 출범 시일을 못 박은 지금까지도 협의체 참여 요청을 받은 15개 의사단체 중 대다수가 협의체에 불참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2025학년도 수학능력 시험일이 목전에 다가온 만큼, 2025년 의대정원 재논의 가능성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어디서, 얼마나 참여하든 일단 협의체 출범을 하겠다’고 밀어붙이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이유가 무엇이든 이 협의체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8개월 이상 지속되고 있는 의료공백 사태를 겪고 있는 국민과 환자에게 여당과 야당, 의사단체와 정부는 공동정범(共同正犯)과 다름없다. 공동정범 모두가 모이든, 그중 일부가 모이든, 그렇게 모여 구성된 곳이 진정 국민을 위한 ‘협의체’로서 제대로 기능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한 대표가 내세운 ‘의료현장 정상화’는 협의체에 의사단체가 참여하느냐 마느냐와 무관하게 이미 진행되었어야 한다. 그러나 정부가 사직 전공의, 의대 교수 등과 서로 조건을 덧붙여가며 싸우는 사이에 의료현장 정상화는 더욱 요원한 일이 되어 버렸다. 의료현장은 현장에 남은 의료인력이 현실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운영하는 방식으로 조정되었고, 그 과정에서 치료가 필요한 환자는 입원과 수술, 항암치료 등을 제때 못 하게 되면서 피해를 입었다. ‘의료개혁의 효율적 진행’은 또 어떤가? 여야의정협의체가 의료개혁의 내용과 방식에도 개입할 생각이라면 지난 4월 25일 출범한 의료개혁특별위원회가 발표하고 추진하고 있는 것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할 셈인지, 협의체가 생각하는 ‘의료개혁’은 무엇이고 그것의 ‘효율적 진행’이란 무엇을 뜻하는지 설명되어야 하지만 그 부분도 명확하지 않다.
결국 여야의정협의체의 핵심은 의대정원 조정일 것으로 보이는 상황에서, 우리는 협의체에 기대할 것이 없다. 국민과 환자가 원하는 것은 생색내기용 협의체가 아니라 사태 해결을 위한 여당, 야당, 의사단체, 정부 각각의 노력, 그리고 모두의 협력이다. 국민과 환자를 담보로 벌이는 의대정원 재조정 협상이 아니라, 지금 당장의 의료공백을 해소하고 지금까지와는 다른 환자중심의 의료체계로 나아가기 위한 대전환의 노력이다. 그런 노력이 보이지 않는다면 여야의정협의체 출범은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할 것이다.
2024년 11월 7일
한국환자단체연합회
(한국백혈병환우회, 한국GIST환우회, 한국신장암환우회, 암시민연대, 한국선천성심장병환우회, 한국건선협회, 한국1형당뇨병환우회, 한국신경내분비종양환우회, 한국PROS환자단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