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환자단체연합회(이하, 환자단체연합회)는 9월 10일 오전 10시, 서울 북촌 소재 포레스트구구에서 제24회 환자샤우팅카페를 개최했다. 이번 환자샤우팅카페에서는 2020년 3월 11일 편도제거수술 의료과실과 불법적 미신고 당직 대타로 인한 골든타임 도과와 심폐소생술을 받으며 119구급대 이송 중인 응급환아 수용 거부로 사망한 당시 만 4세 김동희 군 어머니 김소희 씨가 샤우팅했다. 2012년 6월 27일 제1회를 시작으로 12년째 이어지고 있는 환자샤우팅카페는 환자 또는 환자가족이 자신의 고충·울분·피해를 마음껏 쏟아내고(shouting), 듣는 사람들이 함께 위로하며(healing), 해결을 위한 지혜를 모으는(solution) 보건의료 소통공간이다.
환자단체연합회는 그동안 환자샤우팅카페를 통해 환자안전법 제정(종현이법), 선택진료제도 폐지(영준이 사건), 의약품 부작용 피해구제 제도 도입(약사법 개정), 의료분쟁 조정절차 자동개시제도 도입(의료분쟁조정법 개정→예강이법·신해철법), 진료기록지 수정 시 원본과 수정본 모두 발급의무 도입(의료법 개정→예강이법), 경찰청 의료사고수사전담반 신설, 금융감독원의 고가 퇴원약 실손보험금 지급 결정(김경희 사건), 두번째 암 진단 시에도 5년 산정특례 적용, 수술실 CCTV 설치·촬영 법제화(의료법 개정→권대희법), 중요한 환자안전사고 의무보고제도 도입(환자안전법 개정→재윤이법) 등과 같이 환자의 투병 및 권익 증진에 중요한 제도와 법률을 만들고 개선했다.
이번 제24회 환자샤우팅카페는 방송인이자 상담심리사로 활동 중인 최현정 전 MBC 아나운서가 진행을 맡았고, 그래, 더 공감 더플록 부속 상담훈련센터 표지희 센터장, 법무법인 우성 이인재 변호사, 울산대학교 의과대학 예방의학교실 이상일 교수, 한국환자단체연합회 안기종 대표가 솔루션 자문단으로 참여했다. 객석에는 환자와 환자가족, 의료사고 피해자와 유족 그리고 취재를 위한 언론방송사 기자 등 50여명이 청중으로 참석했다.
2019년 10월 4일, 김소희 씨(만 37세)의 아들 만 4세 김동희 어린이는 상급종합병원인 양산부산대병원에서 편도제거수술을 받았다. 소희 씨는 <수술이 잘 끝났다>는 집도의의 말을 믿고 10월 6일 퇴원했으나 동희는 그 이튿날 10월 7일 상태가 악화하여 2차 병원에 입원했다. 그리고 아이는 입원 이틀째인 10월 9일 수술 부위에 대량의 출혈을 일으켜 의식불명에 빠졌다. 2차 병원에서 제대로 된 응급처치를 받지 못한 채 119구급대원의 CPR(심폐소생술)을 받아야 했던 동희는 편도제거수술을 받은 양산부산대병원 권역응급의료센터의 수용 거부로 오던 길을 돌아 더 먼 거리에 있는 부산동아대병원 권역응급의료센터에 22분 만에 도착했다. 결국은 골든타임을 놓쳐 저산소성 뇌손상으로 5개월을 투병하다 세상을 떠났다.
소희 씨는 이후 진상규명을 위해 형사고소와 민사소송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동희의 죽음이 여러 단계에 걸친 의료과실로 인한 결과였음을 알게 된다. 양산부산대병원에서 편도제거수술을 한 집도의가 재수술·재마취한 사실을 담당 의사에게 알리지 않았고, 동희 사망 후 부모가 항의하자 의무기록지를 수정했다. 입원한 2차 병원에서는 당직 의사의 부재와 대체 당직 의사의 부적절한 대처로 골든타임을 놓쳤다. 동희의 편도제거수술을 했던 양산부산대병원은 당시 권역응급의료센터에 심폐소생술을 받는 다른 위급한 환자가 있다는 이유로 동희의 수용을 거부했다. 그러나 이마저도 경남지방경찰청 의료수사전담팀과 전문검사 이송제도를 통해 서울서부지방검철청에서 의사 면허를 가진 검사의 전문수사로 허위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소희 씨는 <처음부터 진심 어린 사과와 설명을 해줬더라면 여기까지 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의료사고가 발생했을 때 의료과실과 피해와 그 사이 인과관계까지 입증할 책임이 전적으로 피해자와 유족에게 있는 현재 우리나라 법률체계 안에서, 의료사고 피해자와 유족은 슬픔과 분노로 울분을 토할 수밖에 없다.
소희 씨는 마지막으로 <제게 한가지 바람이 있다면, 저희 아들의 사고가 그저 안타까운 죽음이 아니라 아들의 사건을 계기로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재발 방지대책이 마련되었으면 좋겠고요. 이런 의료사고 피해자와 유족이 진상규명을 위해 겪어야 하는 고통과 울분을 세상이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 울분을 해소할 수 있는 제도와 법률도 정부와 국회가 만들어 주시길 바랍니다. 생명의 시계는 잠시 멈추거나 기다려주지 않는데요, 특히나 촌각을 다투는 환자들에게는 응급실 뺑뺑이 사태는 너무나도 가슴 아픈 일입니다. 저희 동희처럼 심폐소생술을 받으며 119구급차로 이송 중인 초중증 응급환자가 치료받을 병원을 찾지 못해 더는 죽는 일이 없도록, 응급실 뺑뺑이라는 부끄러운 단어가 더 이상 언론방송에 나오지 않도록 정부와 국회가 적극적으로 나서 주시기를 바랍니다.>라고 샤우팅했다.
솔루션 자문단으로 참여한 표지희 센터장은 의료사고 피해자와 유족은 의료과실 입증을 위해 민·형사소송이라는 눈앞의 과제에 몰두하는 기간이 긴 만큼, 의료사고 피해자와 유족에 대한 적극적인 정서적·심리적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이인재 변호사는 의료사고가 주로 발생하는 장소인 수술실·검사실의 밀실성으로 인해 환자와 환자가족이 정확한 사실관계를 알기가 어렵고, 시술·수술 과정과 결과를 정확하게 말해주어야 할 의무기록지조차 미비한 경우가 많으며, 현행 법률 체계상 입증책임이 전적으로 피해자와 유족에게 있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상일 교수는 피해자의 울분을 해소하기 위해 의료진의 충분한 설명과 진심 어린 사과가 절실하다고 강조했고, 의과대학에서 교육받고 현장에서 활동하는 대부분의 의사가 의료과실이나 의료사고가 발생했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한 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는 점을 지적하며 이러한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안기종 대표는 현재 의료개혁특별위원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의료사고처리특례법 제정안의 위헌성에 대해 문제 제기하는 한편으로, 해외에서는 당연하게 여겨지는 의료진의 설명과 사과가 우리나라 의료현장에서도 충분히 이루어지게 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국회에서 의료사고 피해자와 유족의 울분 해소를 위해 의료사고 설명의무, 유감 표시 증거능력 배제, 의료사고트라우마 센터 설립·운영 관련 입법을 신속히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환자샤우팅카페에서는 심폐소생술 중인 응급환자의 수용 거부 문제도 함께 논의되었다. 반년 넘게 장기화 되고 있는 의료공백으로 응급실 뺑뺑이 사례가 연일 보도되는 가운데, 동희 경우처럼 심폐소생술을 받으며 구급차로 이송되는 응급환자의 수용 거부가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기 때문이다. 환자단체연합회는 심폐소생술 중인 응급환자가 구급차 안에서 표류하다가 사망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인력·시설·장비 여건이 가장 좋은 최 단거리 권역응급의료센터나 119구급상황관리센터 또는 중앙응급의료센터에서 지정한 응급의료기관에서 환자를 일단 수용하도록 하고, 이 경우 발생한 의료사고에 대해서는 의료진의 형사책임을 면제하는 내용을 법제화해야 한다는 의견을 정부에 전달했다.
21대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김성주 의원이 2021년 7월 29일 발의한 “응급의료기관의 응급환자 수용의무와 수용 불가능 시 사전 통보의무 그리고 이와 관련한 구체적인 기준·방법·절차를 명확하게 법정화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응급의료법 개정안”(일명, “동희법”)이 국회를 통과해 2022년 12월 22일부터 시행되고 있다. 정부는 개정된 응급의료법에 따라 ‘응급환자 적정수용 관리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문제는 2022년과 2023년 각각 2차례에 걸쳐 <수용곤란 고지 관리체계 마련을 위한 협의체>를 구성해 <응급실 수용곤란 고지 관리 표준 지침안> 마련을 위한 사회적 논의를 했다. 그러나 의료계의 반대로 아직 발표하지 못하고 있다.
22대 국회에서 개혁신당 이주영 의원이 2024년 8월 30일 <동희법>으로 불리는 <응급의료기관의 장은 응급환자 수용능력 확인을 요청받은 경우 정당한 사유 없이 응급의료를 거부 또는 기피할 수 없도록 규정한 응급의료법 제48조의2>를 재개정하는 법안을 대표발의했다. <동희법>의 취지는 응급의료기관의 장은 가급적 응급환자를 수용하도록 하고, 응급의료를 거부 또는 기피할 수 있는 정당한 사유가 다양하고 고려할 사항도 많으므로 법원에서 최종적으로 판단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주영 의원의 법안은 정당한 사유를 법률에 구체적으로 7가지로 명시하면서 여기에 <응급실 수용 예정으로 인한 병상 부족>과 <입원 예약으로 병상이 부족한 경우>까지 포함해 응급의료기관이 응급환자 수용을 거부하거나 회피할 수 있는 상황이 상당히 넓어진다는 점에서 <동희법>를 도입한 취지를 반감시킨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이번 환자샤우팅카페는 의료사고 피해자와 유족이 울분을 해소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입법적 노력을 다할 필요가 있음을 다시 한번 상기시키는 자리였다. 또한, 피해자와 유족이 전적으로 의료사고 관련 입증책임을 지는 현행 사법체계를 개선하고, 심폐소생술 중인 응급환자 수용 거부 방지대책을 마련해 응급실 뺑뺑이가 더는 없도록 해야 한다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이번 제24회 환자샤우팅카페를 시작으로 다시 한번 환자에게 중요하고 꼭 필요한 입법과제를 사회적 의제로 만들어 모든 환자가 안심하고 치료받을 수 있는 의료환경을 구축하는 데 힘쓸 것이다.
2024년 9월 11일
한국환자단체연합회
(한국백혈병환우회, 한국GIST환우회, 한국신장암환우회, 한국선천성심장병환우회, 암시민연대, 한국건선협회, 한국1형당뇨병환우회, 한국신경내분비종양환우회, 한국PROS환자단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