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언론의 설립을 제한하려는 움직임은 기득권 언론사에 시작됐다. 이른바 무분별한 언론사가 설립되며, 자신들의 광고 수입을 뺏아간다는 시각을 보인것으로 회자됐다. 그건 이념이 아니었다. 지금 친환경산업으로의 발전과 그 반대의 기득권 산업계의 싸움도 이념이 아니었다. 기후변화를 이야기하는 과학자들을 매도하면서까지 지키는 것은 이념이 아니라 이권이라고 할 수 있다. 필자는 이같은 흐름은 20세기말 진보정치인들이 줄기차게 외친 이념보다는 실리 위주로 나아가야한다고 한 흐름이다. 진보정치인들의 순진한 발상이 항상 문제의 시작이었다고 본다.
실리라는 게 뭔가, 결국은 이권 아닌가. 잘못된 이념은 잘못된 명분으로 바꾸어주어야지, 이념 논쟁을 피하고 실리 위주로 가자는 것은 결국에는 지금과 같은 이권투쟁으로 이끌고 간 것 아닐까 생각이 드는 것이다. 특히 실리로 따지자면, 시장경제가 사회주의 못한다는 근거는 전혀 없다.
또 지금 반중 정서를 부추기는 사람들중에는 상당수가 이념을 앞에 내세웠지만, 기득권 경제로 밥을 먹고 살아갔던 사람들이 상당수다. 그들은 이념을 앞세웠지만, 이권 투쟁을 벌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일반약 부가세를 감세하지 않고, 근로소득세를 더 완전히 감세하지 않고, 부동산 세제 완화 상속세제 완화등도 이념이 아니라 이권이었다. 신자유주의 이론 어디에도 부동산 세제를 깍가주면 더 성장한다는 교육은 이뤄지지 않았다.
이승만 대통령이나 박정희 대통령을 추앙하는 것이나, 김대중 전 대통령을 추앙하는 것이나, 정치인들이 쉽게 권력을 잡기 위한 숨은 이권이다. 이념이 아니다. 여야를 바꾸어서 정치를 하는 사람들 그들도 권력을 잡기 위해 이념을 이용하는 것 아니겠는가.
아니 수많은 언론이 이권에 집중하는 글을 쓰는 것같은 상황도 그렇다.
하지만 명분 없는 실리추구는 속물화의 또다른 시작이다. 모건 단기적인 돈만 집착하다보니, 사람들은 단순노동에 임금이 높이 주어지고, 추상화된 직업은 살기 어려워지고 있다. 누가 이런 상황에서 보수정권이든, 진보정권이든 성공한 대통령이 나오기를 바라겠는가. 임기만 끝나면 물고 늘어지는게 우리 정치다. 내가 받은 핍박을 돌려주고 싶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