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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조건이 같다면, 성적이 높을수록, 소득이 많을수록 행복하다. 이 단순한 말을 찾지 못해, 행복은 성적 순이 아니잖아요 하는 식으로 애써 부정하거나, 세상 3류인들을 위로한다. 그러나 필자는 3류 인생을 살아온지라, 절대적으로 성적이 높다면, 소득이 많았다면, 이같은 고통과 불행한 삶을 살지 않았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즉 다른 조건이 같다면, 성적이 높을수록 소득이 많을수록 행복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말이다. 이걸 다른 식으로 생각해보자. 학벌 차별이 심하지 않다면, 다른 조건이 같더라도 성적이 낮을수록 불행할 것인가 생각해보면, 말하기 어렵다. 즉 빈부차가 작거나, 빈부가 노력에 의해 쉽게 뒤바꿔지는 세상이 온다면, 남들보다 적은 소득이랄지라도 지금과 같은 고통을 겪지 않을 수있는 것 아닐까.
따사로운 햇살과 시원한 봄바람, 이렇게 좋은날에 두려움과 슬픔의 연속이라니. 해맑은 웃음은 사라지고, 주름잡인 얼굴에 쓴웃음만 잔뜩 끼어, 파산과 건강 걱정으로 한시도 마음 편한 날이 없으니, 쓰게 …
수능을 기준으로 한줄로 줄세우는 대입 전형은 파괴되어야 하지 않을까? 물론 수시보다는 정시가 더 공정하고 신뢰할 수 있지만, 학력이란 것을 점수화하는 것처럼 무모한 짓 또한 없을 것이다. 그러나 대입자유와 자유시장을 지지하는 사람들조차 국가가 대입을 개입하는 정시를 선호한다. 너무 불공정한 사회에서 살다보니 그런 것이다.
잔인한 4월이다. 날은 평온한데, 경제는 최대 위기다. 오늘도 청계천에는 삼삼오오 짝을 지어, 점심시간을 만끽하는 젊은이들로부터 붐볐다. 그런 여유를 부릴 수만 있다면, 따사로운 4월 햇살아래, 아름다운 봄을 느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경제가 한겨울이니 해가 따사로울 수가 없는 것이다.가치와 가격을 역설로 배운다. 그러나 역설이 아니다. 가격이 상대가격이라는 비의 값이기에 역설처럼 보이는 것이다. 말을 바꾸어서 생각해보자.
파산 위기에 몰려있으면서, 선동가들에 휘둘리는 사람들을 보면 미쳐버릴 것 같다. 사이비 진보는 늘어난 복지 수요와 빈부 격차 완화를 위해, 가난한 청년에 부담을 지우는 우를 범하고 있다.
살기위한 비용은 어마어마한데, 살아서 얻는 기쁨, 행복감은 낮으니, 자살률도 높고, 출산을 기피하는 것 아닌가. 이를 최대한 단순화시켜 물가는 높고, 소득은 높지 않은 것이고, 더 단순화시키면, 부동산 가격은 어마어마하고 소득은 쥐꼬리만하다고 말할 수 있다. 사이비 진보들은 진보가 표를 못얻는 이유가 부동산 투기에 범죄시화하였기 때문이란 말을 하지만, 소득에 붙는 세금, 사회보험등 부담은 줄이고, 부에 대한 세금이나 사회보험 부담을 늘려가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빈부차는 줄이고, 빈부의 역전을 가져올 수 있다.
금융 제한과 동시에 펼쳐진 재정 긴축은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고통을 주고 죽음으로 내몰고 있나. 구조조정은 가격을 조정해서 가격을 보고, 자연스럽게 진행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지금 실제 일하는 요양보호사는 부족하다고 하는데, 그러네 대출을 제한하고, 정부지원은 하지 않는다고 요양보호사일을 하는 게 아니다. 요양보호사의 소득을 올려주는게 우선이다. 즉 구조조정은 금융정책이 아니라, 가격정책이 되어야 하는 이유다. 그럼에도, 현 정치 지배자들은 민중에 대한 헌신하겠다는 사명감은 없고, 자기 권력만 잡는데, 아랑곳하지 않는다. 왜 굳이 야당이 집권해야 하는가. 그냥 그들은 권력을 잡지 않고, 그 언젠가 운동권 학생들 열정처럼 민중에대한 사명감으로 투쟁만 하면 되지 않는가.
살기위해 기울이는 비용 즉 고난과 역경이 살아서 얻는 행복과 만족감을 넘은지 오래다. 저출산도 출산과 양육의 비용이 양육에서 얻는 이득보다 높다는 것 아닌가. 개인적으로도 지금 살아가는데 드는 비용이 살아서 얻는 기쁨과 행복을 초과한지 오래다. 왜 이렇게 됐을까. 그것은 가치와 가격의 왜곡 때문이지 않을까. 가치와 가격의 왜곡은 어디에서 발생할까. 시장경제가 아닌 자본주의 때문이다고 생각한다.
지랄같은 세상이다.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에 기득권논리가 득세한다. 그 대표적인게 세금 많이 낸 사람이 애국자이며, 그러니 그들에게 권리를 더 줘야한다는 식이다. 그러나 야당은 또 어떤가. 권리당원이라고 해서, 당비를 6개월이상 낸 사람들에게 투표에서부터 권리를 더 많이 주어야 한다는 논리가 득세한다. 돈많은 자본주가 정당을 만들면, 그 사람 맘대로 당을 운영하는 게 좋을까. 지금 많은 소상공인은 당비가 아니라, 카드값 연체를 피하기 위해 피나는 전투를 벌이고 있는데도 말이다.
여러분은 괘찮은가요? 난 괜찮지 않습니다. 자금 압박에 시달려 모든게 무너져 내리는 기분이다. 연이어진 파산 위기에 정신 차릴 틈도 없이 살고 있다. 주간 보호를 다니는 치매 노인들에게 대통령이 누구냐고 묻자 제대로 대답하는 노인이 거의 없다. 유일하게 대답한 사람이 윤석열이라고 하자, 파면됐다하니, 그럼 누구냐고 묻는다. 나도 치매 노인 만큼 지금 세상 돌아가는 게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고 살고 있다. 누가 대선에 나오는지 모든게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지금 나는 불안에 떨고 있다. 이 글을 쓰면서도 가만히 앉아있지 못해 일어나서 주변을 돌고 다시 앉고 하며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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