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를 자처하는 사람들에게 동성애에 대한 입장을 물어보면 의외로 명쾌한 답을 듣기 어렵다. 대개 돌아오는 답변은 비슷하다.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고, 서로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한 가지 생각해 볼 문제가 있다.
다르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과 모든 다름을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것으로 평가하는 것은 같은 말인가?
가령 사람마다 식성이 다르다. 어떤 사람은 채식을 하고 어떤 사람은 육식을 한다. 음악 취향도 다르고 생활방식도 다르다. 그렇다고 모든 차이를 똑같이 권장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차별하지 않는 것과 권장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유독 동성애 문제에 들어서면 이 구분이 흐려진다. 동성애자를 차별하지 말자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으면 마치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이라도 되는 것처럼 몰아간다. 반대로 동성애에 대해 사회적 논의를 제기하면 혐오라는 딱지를 붙이기도 한다.
이쯤 되면 묻고 싶다. 진보란 무엇인가? 무조건 다름을 긍정하는 것인가, 아니면 서로 다른 현상을 차분하게 분석하고 사회적 의미를 따져보는 것인가?
필자는 동성애자를 혐오하거나 차별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성적 지향이 다르다는 이유로 취업이나 사회생활에서 불이익을 주거나 인격적으로 모욕하는 것은 정당화될 수 없다. 누구나 자신의 삶을 살아갈 권리가 있다.
그러나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생각해 보자.
우리 사회는 지금 무엇을 고민하고 있는가? 결혼율은 낮아지고 출산율은 떨어지고 있다. 젊은 세대는 결혼과 출산을 부담스러운 일로 여기고, 국가와 사회는 인구 감소와 생산가능인구 축소를 걱정한다. 정부는 출산장려금을 지급하고 주거와 양육 지원을 확대하며 결혼과 출산을 장려하려고 한다.
그렇다면 사회적으로 결혼과 출산을 장려해야 하는 상황에서 동성 간 결합을 이성 간 결혼과 동일한 생물학적 출산 방식이라고 설명할 수는 없다. 생물학적으로 두 남성 또는 두 여성의 결합만으로는 자녀가 태어나지 않는다. 이것은 혐오의 문제가 아니라 생물학적 사실이다.
물론 동성애자도 입양이나 보조생식기술 등을 통해 부모가 될 수 있다. 따라서 동성애와 가족 형성을 무조건 대립하는 개념으로 볼 필요도 없다.
그렇다면 인간의 존재 목적은 무엇인가?
생물학적 관점에서 유전자의 유지와 번성은 생명체의 중요한 특성이다. 인간 역시 다음 세대로 유전자를 전달하면서 종을 유지해 왔다. 인간에게 사랑과 행복, 문화와 예술, 개인의 자유가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생물학적 번식이라는 측면에서 남녀의 결합이 갖는 의미는 분명하다.
그렇다고 인간의 모든 삶을 출산이라는 하나의 기준으로 평가할 수는 없다. 자녀를 낳지 않는 이성 부부도 있고, 결혼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그렇다고 그들의 삶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출산은 사회적으로 장려할 수 있는 일이지만 개인에게 강요할 수 있는 의무는 아니다.
여기서 진보를 자처하는 사람들에게 다시 묻고 싶다.
왜 차별하지 말자는 주장과 권장해야 한다는 주장을 구분하지 못하는가? 동성애자를 존중하는 것과 동성애를 사회적 가치로 적극 권장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반대로 이성애와 결혼, 출산을 장려한다고 해서 동성애자를 차별하는 것도 아니다.
더욱이 성적 지향은 단순한 홍보나 권유로 선택하고 바꾸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누군가에게 동성애를 권하거나 반대로 이성애를 강요하는 발상 자체가 적절하지 않다.
진보라면 더욱더 이성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차별과 혐오는 경계하되, 생물학적 사실과 사회적 정책 목표까지 외면해서는 안 된다. 다름을 인정하자는 말이 모든 차이에 대한 평가와 논의를 금지하는 면죄부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동성애자를 차별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동성애를 권할 것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