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기는 비탄력적이고 장기는 탄력적이라는 경제학의 도식, 정보화시대에도 유효한가
경제학 교과서를 펼치면 수요의 가격탄력성을 설명하면서 자주 등장하는 문장이 있다. 단기에는 수요가 비탄력적이고 장기에는 탄력적이라는 설명이다. 가격이 올라도 당장에는 소비자가 소비를 줄이기 어렵지만, 시간이 흐르면 대체재를 찾거나 소비 습관을 바꾸기 때문에 수요가 더 탄력적으로 변한다는 논리다.
이 설명은 얼핏 합리적으로 들린다. 그러나 익숙하게 들린다는 것과 엄밀하게 옳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더욱이 정보가 실시간으로 전달되고 소비자가 가격을 비교하며 대안을 찾는 데 걸리는 시간이 급격히 짧아진 오늘날에도 이런 설명을 일반적인 법칙처럼 가르치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
필자가 문제 삼는 것은 단순히 단기와 장기의 구분이 아니다. 시간이라는 측정수단을 마치 경제적 행동을 변화시키는 독립적인 원인인 것처럼 취급하는 사고방식이다. 경제학은 시간을 기준으로 현상을 분류할 수 있다. 그러나 시간을 기준으로 분류했다는 이유만으로 시간이 그 현상의 원인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이것이 필자가 정규 경제교육에 던지는 근본적인 질문이다.
단기에는 비탄력적이고 장기에는 탄력적이라는 도식
전통적인 경제학은 단기와 장기를 구분해 가격탄력성을 설명한다. 가령 휘발유 가격이 올랐다고 하자. 자동차를 소유한 사람이 당장 자동차를 처분하거나 출퇴근 방식을 바꾸기는 어렵다. 따라서 단기에는 휘발유 수요가 가격 변화에 크게 반응하지 않을 수 있다.
반면 장기에는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연비가 좋은 자동차로 바꾸고, 거주지나 직장을 조정하는 등 여러 대안을 선택할 수 있다. 그래서 장기에는 수요의 가격탄력성이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여기서 설명의 편의를 위해 사용한 경향이 어느 순간 일반적인 법칙처럼 굳어진다는 데 있다.
소비자가 대안을 찾는 데 반드시 오랜 시간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가격 정보를 얻는 데 며칠씩 걸리던 시대와 스마트폰으로 수많은 가격을 즉시 비교하는 시대는 다르다. 소비자가 정보를 얻는 속도, 대체재의 존재, 시장의 경쟁 정도, 거래를 바꾸는 데 드는 비용은 서로 다르다.
그렇다면 단기와 장기를 가르는 달력상의 시간이 수요의 반응을 결정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탄력성이 커진다는 설명은 지나치게 단순하다. 시간이 흐르는 동안 소비자의 선택을 바꾸는 것은 정보의 확산, 대체재의 등장, 계약의 만료, 소득의 변화, 경쟁자의 대응 등 구체적인 조건들이다.
그 조건들을 제쳐 놓고 단기와 장기라는 이름만 붙인다면, 우리는 원인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현상을 시간표에 맞춰 분류하는 데 그칠 수 있다.
택시 요금이 오르면 승객은 왜 줄었다가 다시 늘어날 수 있는가
택시 요금이 인상되는 상황을 생각해 보자.
요금 인상 직후에는 승객이 급격히 줄어들 수 있다. 요금이 올랐다는 정보가 빠르게 퍼지고, 승객들이 버스나 지하철, 도보, 다른 이동수단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이 경우에는 짧은 시간 안에도 수요가 크게 반응할 수 있다.
그런데 일정한 시간이 지난 뒤 택시 이용객이 다시 늘어날 수도 있다. 처음에는 이용을 줄였던 사람들이 새로운 요금에 적응했을 수 있고, 다른 교통수단의 불편을 경험한 뒤 택시로 돌아왔을 수도 있다. 특정 시간대에 택시 외의 대안이 부족할 수도 있으며, 소득이나 이동 목적이 달라졌을 수도 있다.
물론 승객이 다시 늘어났다는 사실만으로 가격탄력성이 반드시 작아졌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요금 인상 전후의 가격과 수요량을 비교하고, 계절·소득·교통 여건 등 다른 요인의 영향을 통제해야 한다. 실제로 그러한 변화가 관찰됐다면 그 자료를 통해 원인을 따져야 한다.
그러나 이 사례가 제기하는 질문은 분명하다.
가격 인상 직후에는 수요가 크게 줄고, 시간이 흐른 뒤에는 다시 늘어나는 현상이 실제로 나타난다면, 우리는 무엇을 설명해야 하는가. 단기와 장기라는 시간의 이름인가, 아니면 소비자의 행동을 변화시킨 구체적인 조건인가.
필자는 후자를 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시간이 흘렀다는 사실은 관찰 결과를 기록하는 기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이 흘렀다는 사실만으로 승객이 줄거나 늘어나는 구체적인 과정이 설명되는 것은 아니다.
정보화시대에는 단기가 오히려 더 탄력적일 수 있다
과거에는 가격 인상 소식이 소비자에게 전달되는 데 시간이 걸렸다. 다른 상품의 가격을 비교하거나 새로운 판매자를 찾는 데도 적지 않은 수고가 필요했다. 소비자가 대안을 발견하고 실제 행동을 바꾸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사정이 다르다.
온라인 쇼핑에서는 몇 번의 검색만으로 가격을 비교할 수 있다. 항공권과 숙박시설, 배달음식, 각종 생활용품도 여러 업체의 가격을 즉시 확인할 수 있다. 소비자는 가격이 오르는 순간 다른 판매자를 찾을 수 있고, 기업은 경쟁자의 가격 변화를 빠르게 확인해 대응할 수 있다.
이런 시장에서는 가격 변화에 대한 반응이 짧은 시간 안에 나타날 수 있다. 단기라고 해서 반드시 비탄력적인 것이 아니다.
반대로 장기라고 해서 반드시 탄력적인 것도 아니다. 대체재가 없거나, 독점적인 공급자가 존재하거나, 계약과 전환 비용이 높거나, 소비자가 특정 서비스를 사실상 반드시 이용해야 한다면 시간이 지나도 수요가 크게 변하지 않을 수 있다.
물론 정보가 빠르다고 해서 모든 시장에서 단기 탄력성이 커지는 것은 아니다. 정보를 알아도 대안이 없다면 행동을 바꾸기 어렵다. 경쟁이 치열한 시장과 독점적인 시장의 반응도 다르다.
바로 이 점이 중요하다. 정보의 전달 속도, 대체 가능성, 경쟁 구조, 전환 비용과 같은 조건을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정보화시대의 경제현상을 설명하려면 단기와 장기라는 시간 구분만 반복할 것이 아니라, 소비자가 얼마나 빨리 정보를 얻고 얼마나 쉽게 대안을 선택할 수 있는지를 분석해야 한다.
시간이라는 이름표를 붙이는 것보다 실제 행동을 결정하는 조건을 밝히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시간은 어떻게 원인으로 둔갑했는가
여기서 필자는 더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한다.
시간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시계를 만들어 시간을 측정한다. 하루와 1년을 구분하는 데에는 지구의 자전과 태양 주위의 공전 같은 자연현상의 규칙성이 활용된다. 시계는 그러한 규칙성을 바탕으로 약속된 단위를 표시하고, 우리는 그 단위를 이용해 사건의 순서와 지속시간을 기록한다.
물론 현대 물리학에서 시간은 단순히 시계의 숫자만을 뜻하지 않는다. 시간은 물리학의 중요한 개념이며, 자연현상을 설명하는 이론 속에서 독자적인 역할을 한다.
그러나 여기서 논하는 경제적 인과관계의 문제는 별개다.
택시 요금 인상 후 승객이 줄었다고 하자. 우리는 요금 인상 전후의 시간과 승객 수를 기록할 수 있다. 1시간 뒤, 하루 뒤, 한 달 뒤의 변화를 비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시간의 경과를 측정했다고 해서 시간이 승객 감소의 원인이라는 결론이 자동으로 나오는 것은 아니다.
요금이 인상됐고, 소비자가 그 사실을 알았으며, 대체 교통수단을 선택했다면 수요 변화의 구체적인 경로를 설명할 수 있다. 반면 시간이 흘렀다는 사실만으로는 소비자가 왜 행동을 바꿨는지 알 수 없다.
이것은 단순한 말장난이 아니다. 관찰의 기준과 현상의 원인을 구별하자는 주장이다.
시계가 1시간을 가리킨다는 사실은 사건이 얼마나 오래 지속됐는지를 알려준다. 그러나 그 1시간이 어떤 경제적 변화를 일으켰는지는 별도로 밝혀야 한다.
시간의 경과를 측정하는 것과 시간의 경과가 원인이라고 입증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필자가 문제 삼는 것은 시간을 측정변수로 사용하는 일이 아니다. 시간을 독립변수로 놓고 분석하는 모든 연구를 부정하는 것도 아니다. 시간의 경과 자체가 어떤 과정의 원인이거나,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동태적 메커니즘이 존재할 수 있다는 점까지 부정할 이유는 없다.
다만 경제학 교과서에서 단기와 장기의 차이를 설명할 때, 그 차이를 만들어 내는 구체적인 메커니즘을 밝히지 않은 채 시간이 지나면 탄력성이 커진다고 일반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정규 교육은 분류의 편리함을 인과관계의 설명으로 착각하고 있지 않은가
교육은 복잡한 현상을 이해하기 쉽게 정리하는 과정이다. 단기에는 대체가 어렵고 장기에는 대체가 쉬워질 수 있다는 설명도 입문 단계에서는 유용할 수 있다.
그러나 교육의 편리함이 설명의 엄밀성을 대신해서는 안 된다.
학생에게 단기와 장기의 탄력성을 가르친다면, 적어도 다음 질문도 함께 가르쳐야 한다.
첫째, 소비자가 대안을 찾는 데 걸리는 시간은 얼마나 되는가.
둘째, 가격 정보가 얼마나 빨리 전달되는가.
셋째, 다른 상품이나 서비스로 전환할 수 있는가.
넷째, 시장에 경쟁자가 얼마나 존재하며 공급자는 가격 변화에 어떻게 대응하는가.
다섯째, 관찰된 수요 변화가 가격 때문인지, 소득이나 계절 또는 다른 요인 때문인지 어떻게 구별할 것인가.
이런 질문을 생략하고 단기에는 비탄력적이며 장기에는 탄력적이라는 문장만 암기하게 한다면, 학생은 경제현상을 분석하는 능력보다 교과서의 도식을 재현하는 능력을 먼저 배우게 된다.
정규 교육이 진정으로 가르쳐야 할 것은 정답처럼 보이는 문장을 외우는 기술이 아니다. 어떤 조건에서 그 설명이 성립하며, 어떤 조건에서는 달라지는지를 따지는 태도다.
경제학에서 시간은 중요한 분석 기준이다. 하지만 기준이라는 사실이 곧 원인이라는 뜻은 아니다. 시간에 따른 차이를 관찰했다면 그 차이를 만들어 낸 조건과 작동 과정을 찾아야 한다.
이것이 교육에서 빠져서는 안 될 인과관계의 기본이다.
시간을 지워버리자는 것이 아니라, 시간에 대한 맹신을 버리자는 것이다
필자의 주장을 시간을 경제학에서 없애자는 뜻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단기와 장기의 구분은 필요하다. 정책 효과가 언제 나타나는지, 계약이 얼마나 지속되는지, 기업의 생산능력이 얼마나 빨리 조정되는지, 소비자가 대안을 찾는 데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리는지를 분석하려면 시간의 측정이 필요하다.
그러나 시간을 측정해야 한다는 사실과 시간 자체를 모든 변화의 원인으로 간주해야 한다는 주장은 다르다.
경제학에서 중요한 것은 시간의 길이만이 아니라 그 시간 동안 무엇이 일어났는가이다. 정보가 전달됐는가. 대체재가 나타났는가. 경쟁자가 진입했는가. 계약이 끝났는가. 소비자의 소득과 선호가 바뀌었는가. 이러한 변화가 없는데도 시간이 흘렀다는 이유만으로 수요의 탄력성이 반드시 커진다고 말할 수는 없다.
반대로 짧은 시간 안에 정보와 선택 조건이 크게 달라진다면, 짧은 기간에도 수요는 크게 반응할 수 있다.
그러므로 경제현상을 분석할 때는 시간의 흐름과 그 시간 동안 일어난 변화를 구분해야 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어떤 변화가 발생했다면, 그 변화가 시간의 경과 자체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시간과 함께 달라진 다른 조건에서 비롯된 것인지 확인해야 한다.
이 구분을 무시하면 시간은 설명의 도구에서 설명을 대신하는 구호로 바뀐다.
결론: 시계는 변화를 재지만, 그 변화의 원인까지 알려주지는 않는다
단기에는 비탄력적이고 장기에는 탄력적이라는 설명은 모든 시장에 적용되는 불변의 법칙이 아니다. 특정한 조건에서 관찰될 수 있는 경향이며, 시장과 상품, 정보 전달 속도, 경쟁 구조, 대체 가능성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정보화시대에는 짧은 시간 안에도 소비자의 선택이 크게 바뀔 수 있다. 반대로 오랜 시간이 지나도 선택을 바꿀 조건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수요는 여전히 비탄력적일 수 있다.
그렇다면 이제 질문을 바꿔야 한다. 얼마나 오래 지났는가만 묻지 말고, 그동안 무엇이 달라졌는가를 물어야 한다. 그리고 그 변화가 수요에 영향을 미친 경로를 확인해야 한다.
필자는 정규 경제교육이 단기와 장기의 구분을 가르치는 데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시간에 따른 현상의 차이를 설명하려면 그 차이를 만들어 낸 조건과 인과관계를 밝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시간은 원인을 밝히는 수단이 아니라 원인을 대신하는 편리한 말이 된다.
시간은 변화를 측정하는 기준이다. 그러나 시계가 움직였다는 사실만으로 경제적 변화의 원인이 밝혀지는 것은 아니다.
시계는 사건이 언제 일어났고 얼마나 지속됐는지를 알려준다. 하지만 왜 그 사건이 일어났는지는 알려주지 않는다. 그 답은 정보를 얻는 방식, 인간의 선택, 시장의 경쟁, 제도의 구조와 같은 구체적인 조건 속에서 찾아야 한다.
근대적 사고의 이름으로 굳어진 설명이라도 그 설명이 실제 인과관계를 밝히지 못한다면 다시 검토해야 한다. 경제학 교육 역시 예외일 수 없다.
이제 정규 교육은 단기와 장기의 도식을 정답처럼 암기시키는 데서 벗어나야 한다. 시간이라는 측정 기준과 경제적 변화의 원인을 구별하는 것, 바로 거기에서 경제현상을 제대로 이해하는 교육이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