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한 가난과 외로움속에 어느덧 반백이 됐다. 옛날 같으면 노인이 되는 환갑이 거의 다됐다. 60평생을 단 합넌도 크게 마음놓고 웃지 못하고 분노와 슬픔과 설움, 한과 함께 살아왔다. 리셋할 수는 없을까. 인생도 리셋할 수는 없냐고 하늘에 외쳐본다. 이생은 망했으니, 다시 다른 인생은 없느냐고 따져묻는다. 하지만 세월은 흐르는게 아니다. 모두가 변화해간것이지, 세월이 흘러 모두가 변한 것은 아니다. 우리는 관성 법칙에 의해서건 기본적으로 생각한다. 외부힘이 없다면, 운동하는 물체는 등속 직선운등을 영구히 한다고. 즉 그같은 생각에는 시간이 운동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것을 추정하는 것이다. 물론 관성의 법칙의 근본적인 한계는 내외부의 힘이 없는 물체는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다. 그래도 만약 존재한다면 등속직선운동을 한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들 말한다. 시간이 흘러 만물이 변하는 것처럼. 그러나 만물이 변하는 속도를 인간이 측정하기 위해 시간을 만든 것이다고 할 수 있다. 만약 지구가 태양을 한바퀴 도는데, 1년이 아니라, 2년이라면, 우리의 시간은 두배로 계산된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세포의 변화속도까지 공전에 따라 바뀔지는 모르겠지만, 봄꽃은 2년 만에 한번 피는 등 생장주기가 2배로 늘어날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해보라.
자유낙하운동에서 운동속도가 시간에 비례하여 등가속도 운동을 한다고 말하지만, 시간이 운동에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다. 거리에 비례한다고도 하는 그것도 공간이 운동속도에 영향을 주는 것이라고 해선 안된다.
다시 관성법칙을 생각해보라. 무한히 등속직선운동을 한다는 것은 공간이 힘이나 속도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또 시간이나 거리에 비례해서 속도가 바뀐다면, 역으로 물체를 공중으로 올려보냈을때 대기권 밖으로 더 빠르게 날라가야 하는 것 아닌가.
우린 일반이니 말하는 생각에서건, 상대성 법칙등 과학에서도 시간은 공관과 함께 변화의 종속변수가 아닌 종속변수마냥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시간은 인과성 변수가 아닌 동시성 변수로만 작용한다. 숙성을 시킨다는 것도, 시간을 주입하는 게 아니다. 변화가 일어나는 시간을 기다려주는 것이다.
흔히 세월이 흘러가서 변했다고 생각하지만, 변해진 기간이 세월인 것이다.
고정관념이 되어버린 상식과 지식을 깨버리고 마음을 열어놓고 생각해보라 시간은 변화의 주체가 아니라 변화속도를 측정하는 수단에 불과한 것이다. 이같은 말을 전하는 필자의 저서 닫힌 사고를 열어라에도 많은 관심을 보여주기 바란다.
다음 챗GPT의 리라이팅 글이다.
시간은 흐르는가, 변화가 쌓이는가
“이 생은 망했으니 다시 다른 인생은 없느냐.”
우리는 때때로 이렇게 묻는다. 삶을 하나의 시간선 위에서 바라보며, 지나간 시간은 돌아오지 않는 강물처럼 흘러가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말 세월이 흐르는 것일까. 아니면, 단지 우리가 변해가는 것을 시간이라는 이름으로 기록하고 있는 것일까.
많은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 만물이 변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어쩌면 그 반대일지도 모른다. 만물이 변화하기 때문에 인간은 그 변화를 측정하기 위한 도구로 시간을 만들어낸 것은 아닐까.
물리학의 관성 법칙을 떠올려 보자. 외부의 힘이 없다면 물체는 영원히 등속 직선운동을 한다고 가정한다. 이 가정 속에는 하나의 묵시적 전제가 숨어 있다. 시간이 흐른다고 해서 운동 상태가 저절로 변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속도의 변화는 힘에 의해 발생할 뿐, 시간 그 자체가 원인이 되지는 않는다.
물론 현실에서는 완전히 외부 힘이 없는 물체는 존재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이 법칙은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우리는 시간을 변화의 원인으로 착각하지만, 실제로 변화는 상호작용과 조건에서 발생한다는 점이다.
시간의 개념 역시 인간이 설정한 척도일 뿐이다. 지구가 태양을 한 바퀴 도는 주기를 1년이라 부르지만, 만약 그 주기가 지금의 두 배였다면 우리는 전혀 다른 단위로 시간을 계산했을 것이다. 그때 봄꽃이 두 해에 한 번 피었다면, 우리는 그것을 느린 시간이라 불렀을까, 아니면 단지 다른 생장 주기라 불렀을까.
자유낙하 운동을 떠올려 보자. 속도가 시간에 비례해 증가한다고 말하지만, 이것이 시간 자체가 운동을 변화시키는 원인이라는 뜻은 아니다. 중력이라는 힘이 존재하기 때문에 속도가 변하는 것이며, 시간은 그 변화를 기록하는 좌표에 불과하다.
우리는 종종 시간이나 공간을 변화의 주체처럼 말한다. 하지만 관성의 관점에서 보면, 공간 자체가 물체의 속도를 바꾸지 않듯, 시간 또한 변화의 원인이 아니라 변화의 순서를 표시하는 틀에 가깝다. 시간과 거리에 비례한다는 표현은 인과 관계라기보다 기술 방식일 뿐이다.
숙성이라는 말을 생각해 보자. 우리는 “시간이 숙성을 만든다”고 말하지만, 사실 시간은 무엇을 주입하지 않는다. 단지 변화가 일어나는 동안 기다려주는 틀일 뿐이다. 변화는 화학적 반응과 환경 조건 속에서 이루어지고, 시간은 그 과정을 관찰하기 위한 눈금이다.
결국 세월이 흐른다고 느끼는 것은, 변화가 누적된 결과를 뒤늦게 인식하는 인간의 방식일지도 모른다. 세월이 변화를 만든 것이 아니라, 변화가 쌓인 길이를 우리가 세월이라 부르는 것은 아닐까.
고정관념이 되어버린 상식과 지식을 잠시 내려놓고 생각해 보자. 시간은 변화의 주체가 아니라, 변화의 속도를 측정하기 위한 하나의 언어일 뿐일지도 모른다.
이 같은 관점을 더 깊이 탐구하고 싶다면, 필자의 저서 『닫힌 사고를 열어라』 역시 하나의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