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은 위중한 환자에 대한 긴급한 처치가 이루어지는 진료공간이다. 이러한 특수성을 고려해 압수수색은 환자안전과 진료의 연속성을 최우선으로 하여 신중하게 집행해야 한다.
▶그러나 응급실이라는 이유만으로 적법한 영장에 따른 압수수색을 원칙적으로 제한해서는 안 된다. 피해자에게 증거 확보는 진실 규명의 핵심 수단이다.
▶정부는 가이드라인 제정 과정에서 최근 10년간 응급실 현장 압수수색 영장의 신청·청구·발부·집행 현황을 전수조사해 실제 압수수색 실태부터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
▶정부는 응급환자의 안전을 위한 압수수색 가이드라인 마련을 넘어 의료사고 수사 전반을 제한하거나 위축시키는 가이드라인으로 확대해서는 안 된다.
▶가이드라인은 환자안전과 증거 보존·확보를 함께 보장해야 하며, 제정 과정에 환자단체를 반드시 참여시켜야 한다.
지난 9월 30일 경찰의 아주대병원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 압수수색을 계기로 대한소아응급의학회 등 의료계는 응급실·중환자실·분만실 등 필수의료 현장에 대한 압수수색의 원칙적 제한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보건복지부와 경찰청은 관련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기로 했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응급환자의 안전과 진료의 연속성을 보호하기 위한 압수수색 가이드라인 마련의 필요성에는 공감한다. 그러나 가이드라인이 의료사고 피해 환자와 유족의 진실 규명과 증거 확보를 어렵게 만드는 결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첫째, 응급환자의 안전과 진료의 연속성을 최우선으로 보호해야 한다.
심정지·호흡부전·중증외상 환자를 치료하는 응급실에서는 짧은 처치 지연도 생명과 예후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압수수색 과정에서 의료진의 응급처치를 방해하거나 진료용 컴퓨터·장비의 사용을 제한해 환자안전을 위협해서는 안 된다. 영장 집행은 환자 진료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는 범위에서 이루어져야 하며, 응급환자의 상태와 현장 의료진의 의견을 고려해 환자안전 보호조치를 우선해야 한다.
둘째, 정부는 이번 아주대병원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 압수수색 영장 집행 과정의 사실관계와 최근 10년간 응급실 압수수색 현황을 정확하게 확인해야 한다.
의료사고 피해 환자와 유족은 진실 규명에 필요한 증거를 직접 확보하기 어렵고, 수사기관의 압수수색과 같은 적극적인 증거 확보도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호소해 왔다. 따라서 정부는 가이드라인 제정 과정에서 최근 10년간 응급실 압수수색 영장의 신청·청구·발부·집행 현황을 전수조사하고, 실제 응급실 현장 압수수색과 진료기록 등에 대한 압수수색을 구분해 실태를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
이번 아주대병원 사건은 응급실 현장 압수수색의 필요성과 실제 집행 방식의 적정성을 구분해 검토해야 한다. 경찰의 영장 신청과 검사의 청구, 법원의 발부 경위를 확인 가능한 범위에서 살펴보고, 실제 영장 집행 과정에서 응급환자의 안전과 진료의 연속성이 충분히 보호되었는지 확인해야 한다. 특히, 임의제출이나 별도 전산실을 통한 자료 확보 등 증거의 원본성과 무결성을 보장하면서도 환자 진료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는 대체 방법이 가능했는지도 검토해야 한다. 적법한 영장이 발부되었다는 사실만으로 실제 집행 방식의 적정성까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셋째, 응급실도 적법한 압수수색의 예외 장소가 될 수 없다.
의료사고의 핵심 진료 정보는 대부분 의료기관이 작성·관리하지만 피해 환자와 유족은 접근하기 어렵다. 특히 민사소송에서 의료과실과 인과관계를 증명해야 하는 피해 환자와 유족에게는 입증 부담이 크다. 형사고소는 의료진의 형사책임을 묻기 위한 절차이지만, 수사기관을 통해 사고 경위를 밝히고 피해자가 직접 확보하기 어려운 객관적 증거를 확보하는 중요한 수단이기도 하다. 전자의무기록 원본과 수정 이력·접속기록, CCTV 영상과 의료기기 기록 등은 사고 경위를 밝히는 중요한 자료이며, 시간이 지나면 삭제되거나 확보가 어려워질 수 있다.
임의제출로 증거를 충분하고 신속하게 확보할 수 있다면 이를 우선 검토할 수 있다. 그러나 범죄 혐의와 수사상 필요성이 인정되고 증거의 제출 거부·누락이나 변경·인멸 우려가 있는 경우에는 필요한 압수수색을 제한하거나 지연시켜서는 안 된다. 압수수색의 필요성과 집행 여부를 의료기관이나 의료진이 사실상 결정하게 해서도 안 된다. 물론 환자가 사망했다는 사실만으로 의료진의 과실이나 범죄를 단정해서도 안 되며, 수사는 객관적인 증거와 적법절차에 따라 공정하게 진행해야 한다.
넷째, 응급실 압수수색 가이드라인에는 다음의 여섯 가지 기준을 명확히 담아야 한다.
① 환자안전과 진료 연속성: 진료 중인 공간 출입과 의료진의 업무 중단, 진료용 장비의 사용 제한을 최소화한다. 환자안전을 위해 필요한 경우 현장 의료진과 집행 방식을 협의하되, 사전 협의를 영장 집행의 필수 요건으로 삼거나 증거 확보를 지연시키는 수단으로 이용해서는 안 된다.
② 증거의 신속한 확보와 원본 보존: 전자의무기록 원본과 수정 이력·접속기록, CCTV 영상, 의료기기 기록 등을 신속히 확보·보존한다. 원본 또는 원본과 동일하게 복제한 자료를 확보하고, 필요한 경우 디지털 포렌식으로 원본과의 일치 여부와 변경·훼손 여부를 검증한다.
③ 진료공간과 증거 확보의 분리: 가능한 경우 전산실·기록 보관장소 등에서 진료시스템을 중단하지 않고 자료를 확보한다. 다만 진료공간에서 직접 증거를 확보할 필요가 있거나 증거의 변경·인멸 우려가 있는 경우에는 환자안전 조치를 하면서 적법한 영장에 따라 필요한 범위에서 집행한다.
④ 피해 환자·유족의 권리 보장: 환자안전을 위해 압수수색의 범위를 축소하거나 집행을 연기해야 하는 경우에도 증거의 삭제·변경·인멸을 방지하기 위한 적법한 보존조치를 병행한다. 또한, 법령이 허용하는 범위에서 피해 환자와 유족에게 수사 진행 상황을 안내한다.
⑤ 개별적 필요성과 비례성: 범죄 혐의와 증거의 사건 관련성·확보 필요성, 대체수단의 가능성, 증거의 훼손·인멸 위험, 환자안전에 미치는 영향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한다. 응급실의 특수성을 고려한 안전조치는 마련해야 하지만, 장소만을 이유로 필요한 압수수색을 일률적으로 배제해서는 안 된다.
⑥ 집행의 기록과 사후 검증: 환자안전 조치, 실제 진료에 미친 영향, 영장 집행 경위와 증거 확보 과정을 기록하고 사후에 점검한다. 이를 통해 환자안전 침해와 진료 차질뿐 아니라 부당한 수사 지연이나 증거 확보의 부실 여부도 함께 검증한다.
다섯째, 환자안전을 위한 압수수색 가이드라인을 의료사고 수사 전반의 제한으로 확대해서는 안 된다.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은 10월 7일 국정감사에서 의료계 입장을 반영한 수사·압수수색 관련 가이드라인을 경찰청과 협의해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부는 응급환자의 안전과 진료의 연속성을 보호하기 위한 압수수색 가이드라인을 의료사고 수사 전반을 제한하거나 위축시키는 가이드라인으로 확대해서는 안 된다.
응급환자의 안전을 보호하기 위해 압수수색의 장소와 방법 등을 신중하게 정하는 합리적인 절차는 필요하다. 그러나 이를 이유로 의료사고에 대한 정당한 수사를 위축시키거나 적법한 영장에 따른 증거 확보를 과도하게 제한해서는 안 된다. 정부가 의료계의 입장만 반영해 의료사고 수사와 증거 확보를 제한한다면, 피해 환자와 유족은 사고의 진실을 밝히고 실질적인 피해구제를 받는 데 더 큰 어려움을 겪게 될 수 있다. 정부는 의료진의 정당한 권리와 환자안전을 보호하면서도 피해 환자와 유족의 진실 규명과 증거 확보를 함께 보장해야 한다.
여섯째, 환자단체의 실질적인 참여를 보장하고 의료사고 피해자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정부는 의료계와 수사·법률·응급의료·환자안전·디지털 포렌식 전문가뿐 아니라 환자단체가 추천한 사람이 참여하는 공식 협의체를 구성해야 한다. 특히 의료사고 피해 환자와 유족이 겪은 증거 확보의 어려움, 진료기록의 진실성 문제, 수사 지연으로 인한 피해를 직접 듣고, 가이드라인 초안을 공개해 충분한 의견수렴 과정을 거쳐야 한다. 시행 후에도 환자안전과 증거 확보에 미친 영향을 평가하고 개선해야 한다. 환자의 권리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가이드라인을 의료계와 정부만의 협의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생명을 살리기 위해 헌신하는 의료진을 존중한다. 의료진이 안심하고 응급진료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과 의료사고 피해자의 진실 규명 기회는 함께 보장되어야 한다. 어느 한쪽을 보호한다는 이유로 다른 한쪽을 희생시켜서는 안 된다. 이번 논란의 배경에는 응급실에서 치료받던 중 숨진 어린 환자와 사망 경위를 알고자 하는 유족이 있다. 정부는 치료받는 환자도, 의료사고 피해 환자와 유족도 소외시키지 않는 가이드라인을 마련해야 한다. 응급환자의 생명도 지키고, 의료사고의 진실도 지켜야 한다.
2026년 11월 3일
한국환자단체연합회
(한국백혈병혈액암환우회, 한국GIST환우회, 한국신장암환우회, 암시민연대, 한국선천성심장병환우회, 한국건선협회,
한국1형당뇨병환우회, 한국신경내분비종양환우회, 한국PROS환자단체, 한국파킨슨희망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