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사람들은 국가가 운영하거나 지원하는 것에 대해 묘한 불신을 갖고 있다.
얼마 전 한 인사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정부에서 공급하는 도시락을 먹었더니 배가 아프더라. 정부가 주는 게 다 그런 거지."
물론 과장 섞인 농담일 수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이 말을 듣고 피식 웃는 이유가 있다. 어딘가 공감되기 때문이다.
정부가 하면 왠지 품질이 떨어질 것 같고, 민간이 하면 비싸더라도 더 나을 것 같은 인식이 사회 곳곳에 퍼져 있다.
이것은 단순한 편견이 아니다.
수십 년 동안 누적된 경험의 결과다.
건강보험만 봐도 그렇다.
급여 항목이라고 하면 왠지 기본형, 최저가, 최소 서비스라는 이미지가 떠오른다. 반면 비급여라고 하면 비싸지만 더 좋은 치료, 더 좋은 재료, 더 좋은 서비스를 연상한다.
건강검진도 마찬가지다.
많은 사람들이 국가 건강검진보다 회사에서 제공하는 종합검진이나 민간병원의 고가 검진을 더 신뢰한다. 실제 효율성과는 별개의 문제다.
중요한 것은 국민의 인식이다.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은 "공공은 싸구려, 민간은 고급"이라는 프레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정치가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과거 군부독재 시절의 국가 주도 자본주의는 효율을 앞세웠지만 자유를 억눌렀다.
시민들은 그 시대를 경험하며 국가 권력의 오만함에 진저리를 쳤다.
그래서 민주화를 외쳤다.
학생운동권은 시대의 영웅이었다.
독재와 싸웠고 민주주의를 외쳤다.
국민은 그들에게 박수를 보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상황은 이상하게 변했다.
독재 권력은 사라졌지만 새로운 기득권이 나타났다.
거리에서 혁명을 외치던 사람들이 국회로 들어갔고, 시민운동가들은 장관이 되었고, 노동운동가들은 공공기관장이 되었다.
문제는 그 이후였다.
그들은 세상을 바꾸겠다고 했지만 정작 자신들이 새로운 기득권이 되는 데는 성공했어도 시스템을 바꾸는 데는 실패했다.
아니, 더 솔직히 말하면 시스템을 바꾸지 않았다.
바꾸면 자신들의 권력도 흔들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군부 시절의 낡은 관료주의 위에 운동권식 도덕주의가 덧칠되었다.
시장에 대한 이해도 부족했다.
기업은 적으로 취급되기 일쑤였고 부동산 정책은 규제가 답이라는 사고에 갇혔다.
결과는 무엇인가.
아파트 가격은 잡겠다며 수십 개의 규제를 쏟아냈지만 오히려 공급을 막았다.
집값은 폭등했다.
청년들은 절망했다.
이제 와서 공급을 늘리겠다고 말한다.
묻고 싶다.
정권 초기에 뭘 했는가.
공급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아파트 한 채를 짓는 데도 수년이 걸린다.
규제로 시장을 묶어두고 있다가 갑자기 공급 확대를 외치는 것은 홍수가 난 뒤에 둑을 쌓겠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더 답답한 것은 사고방식이다.
여전히 문제를 만나면 국가가 직접 하겠다는 발상이 나온다.
공공주택을 늘리면 문제 해결.
공공시설을 늘리면 문제 해결.
공공급여를 늘리면 문제 해결.
그런데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공공분양이 과도하게 늘어나면 민간분양이 위축될 수 있다.
민간 공급이 줄어들면 희소성이 커진다.
그러면 오히려 민간 아파트 가격은 더 오를 수 있다.
시장이라는 것은 명령한다고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바로 여기서 사람들은 공산주의도 자본주의도 아닌 새로운 길을 찾게 된다.
완전한 국가 통제도 싫다.
그렇다고 무제한 시장 만능주의도 싫다.
과거 군부독재식 국가 자본주의도 싫고, 운동권 출신 정치인들의 국가주의적 이상론도 싫다.
그래서 제3의 길이 주목받는다.
흥미로운 점은 이 제3의 길이 사실은 멀리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미 우리 주변에 존재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시내버스 준공영제다.
준공영제는 민간이 운영하되 공공이 관리하고 지원하는 방식이다.
버스회사는 민간이 맡는다.
하지만 노선 관리와 공적 지원은 지자체가 담당한다.
공공성과 효율성을 절충한 모델이다.
완벽하진 않지만 적어도 시민들은 안정적인 교통 서비스를 제공받고 있다.
보험도 비슷한 접근이 가능하다.
국가가 모든 것을 직접 책임지려 하기보다 민간보험을 적극 활용하면서 공공이 가입을 지원하는 방식이 가능하다.
그러면 사회보험 재정 부담을 줄일 수 있다.
동시에 민간의 전문성과 자본도 활용할 수 있다.
공공과 민간이 경쟁하면서 협력하는 구조다.
그렇다면 아파트는 어떨까.
답은 의외로 단순하다.
정부가 집을 직접 다 짓겠다고 나설 필요도 없고, 시장에 모든 것을 맡길 필요도 없다.
민간이 적극적으로 공급하도록 길을 열어주되 공공은 토지와 인프라, 금융지원, 분양안전장치에 집중하면 된다.
공공이 심판을 맡고 민간이 뛰는 경기장을 만드는 것이다.
지금처럼 심판이 선수까지 하겠다고 나서는 순간 시장은 왜곡된다.
대한민국은 지금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과거의 군부독재 모델은 답이 아니다.
학생운동권 출신 정치인들이 보여준 낡은 국가주의도 답이 아니다.
국민은 더 이상 이념에 감동하지 않는다.
결과를 원한다.
효율을 원한다.
품질을 원한다.
그리고 책임을 원한다.
진보냐 보수냐의 시대는 끝나가고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국가냐 시장이냐를 놓고 싸우는 정치가 아니다.
국가와 시장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를 고민하는 정치다.
국민은 이미 답을 알고 있다.
모든 것을 국가가 하겠다는 주장도 믿지 않는다.
모든 것을 시장에 맡기자는 주장도 믿지 않는다.
진짜 개혁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둘의 장점을 결합하는 새로운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그 출발점은 국민을 계몽의 대상으로 보는 운동권적 사고를 버리고, 국민이 이미 현명한 소비자이자 시민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