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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비 진보는 틀렸다, 시간의 굴레를 꺠야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

2026-10-12 14:33 | 입력 : 강동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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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굴레를 깨야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다
시간급의 함정에 갇힌 노동, 규모의 경제를 가로막는 낡은 보상 체계
아무리 일해도 빚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새벽부터 일어나 저녁 늦게까지 몸을 움직인다. 남들보다 더 일찍 출근하고, 더 늦게 퇴근하며, 쉴 시간마저 줄여가며 하루를 살아낸다. 그런데도 삶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다. 열심히 일한 만큼 소득이 늘어나기는커녕, 치솟는 생활비와 대출이자에 쫓겨 다음 달을 걱정해야 한다.

왜 그럴까?

우리는 흔히 가난의 원인을 개인의 노력 부족에서 찾는다. 더 열심히 일하고, 더 많은 시간을 노동에 투입하면 언젠가는 형편이 나아질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하루는 누구에게나 24시간이다. 아무리 성실한 사람이라도 하루를 30시간으로 늘릴 수는 없다. 노동자가 자신의 시간을 전부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구조에서는 노력만으로 극복할 수 없는 한계가 존재한다.

시간을 더 투입해야만 소득이 늘어나는 경제, 바로 여기에 우리가 직면한 구조적 문제가 있다.

이제는 질문을 바꿔야 한다. 어떻게 하면 더 오래 일할 수 있을까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같은 시간에 더 큰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를 물어야 한다. 더 나아가 노동자가 자신의 시간을 무한정 팔지 않아도 소득을 높일 수 있는 구조를 고민해야 한다.

그 출발점은 시간에 노동의 가치를 묶어두는 낡은 보상 체계를 다시 생각하는 데 있다.

1. 시간급은 노동자의 하루를 가둔다
시간급은 이해하기 쉽고 계산하기도 편리하다. 한 시간 일하면 얼마, 하루 일하면 얼마를 지급하는 방식이다. 노동시간을 기준으로 임금을 산정하면 사용자는 노동비용을 계산하기 쉽고, 노동자는 자신의 근무시간에 따른 보상을 예상할 수 있다. 시간급은 노동의 가치를 측정하는 가장 익숙한 방식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편리하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노동을 시간에 종속시켜도 되는 것은 아니다.

시간급의 가장 큰 한계는 소득의 증가를 노동시간의 증가와 직접적으로 연결한다는 데 있다. 한 시간에 받는 임금이 정해져 있다면 소득을 늘리는 가장 단순한 방법은 더 오래 일하는 것이다. 두 배의 소득을 얻으려면 두 배 가까이 일해야 한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따라붙는다. 물론 실제 소득은 근무 형태와 임금 수준에 따라 달라지지만, 시간에 비례해 보상하는 구조가 지배적일수록 노동자의 소득에는 분명한 천장이 생긴다.

몸은 한계가 있고 시간도 한정돼 있다. 노동자가 더는 시간을 늘릴 수 없는 지점에 도달하면 소득 역시 정체된다. 반면 주거비와 식비, 교통비와 각종 공과금은 노동자가 얼마나 오래 일했는지와 상관없이 청구된다. 소득은 시간의 한계에 부딪히는데 지출은 멈추지 않는다. 그 간극이 커질수록 사람들은 빚에 의존하고, 빚은 다시 더 많은 노동을 강요한다.

이것이 시간의 굴레다.

물론 시간급 자체가 불공정한 제도라는 뜻은 아니다. 시간급은 초과근로를 보상하고 노동자의 최소한의 권리를 보호하는 중요한 기준이 될 수 있다. 문제는 시간급만으로 노동의 가치를 평가하고, 시간에 비례하는 방식만으로 소득을 늘리려는 데 있다.

모든 노동을 시간으로만 환산하는 사회는 노동자가 더 많은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는 가능성까지 시간의 틀 안에 가둬버릴 수 있다.

2. 재가 요양보호사의 현실이 보여주는 시간급의 모순
이러한 모순은 서비스 노동의 현장에서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재가 요양보호사의 방문요양이 대표적이다.

요양보호사는 정해진 시간에 어르신의 가정을 방문해 돌봄 서비스를 제공한다. 어르신의 건강 상태와 가정환경, 당일의 필요에 따라 실제 업무의 강도와 진행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어떤 날은 예상보다 일찍 마무리될 수 있고, 어떤 날은 여러 사정으로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수도 있다.

그런데 서비스 제공시간과 보상 체계가 긴밀하게 연결돼 있으면 현장에서는 복잡한 문제가 발생한다. 업무가 일찍 끝났다고 해서 요양보호사의 하루가 온전히 자유로워지는 것도 아니고, 일정이 늦어졌다고 해서 추가적인 부담이 언제나 적절히 보상되는 것도 아니다. 계약된 서비스시간, 실제 제공시간, 급여 산정 기준, 추가 업무의 인정 여부가 서로 맞물리면서 갈등이 생긴다.

특히 보호자가 서비스 제공시간과 실제 업무량의 관계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면 문제가 더 커진다. 정해진 시간까지 계속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나, 반대로 일이 일찍 끝났으니 더 많은 일을 해달라고 요구할 수 있다. 요양보호사는 계약과 업무 범위, 실제 돌봄의 필요성 사이에서 난처한 상황에 놓인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어느 한쪽을 무조건 탓하는 일이 아니다. 보호자에게도 돌봄이 필요한 가족을 맡긴다는 부담이 있고, 요양보호사에게도 정당한 보상과 휴식, 노동의 경계를 지킬 권리가 있다. 문제는 양쪽의 이해관계가 충돌할 때 이를 합리적으로 조정할 수 있는 제도가 충분한가 하는 것이다.

돌봄은 단순히 시계의 분침이 움직이는 만큼만 가치를 만들어내는 일이 아니다. 숙련된 판단, 관계 형성, 위험 예방, 정서적 지원, 돌봄 대상자의 상태에 대한 세심한 관찰이 함께 작용한다. 겉으로 드러나는 업무량이 적어 보이는 순간에도 그 일을 가능하게 하는 경험과 책임이 존재한다.

그런데 보상 체계가 오로지 시간의 길이에만 집중하면 이러한 가치들은 제대로 드러나기 어렵다.

돌봄의 가치를 시계로만 측정하는 순간, 우리는 돌봄 노동의 중요한 부분을 가격에서 지워버릴 위험이 있다.

3. 사회에 꼭 필요한 노동일수록 왜 가난해야 하는가
더 심각한 문제는 돌봄을 비롯한 여러 서비스 노동이 사회에 꼭 필요한 일임에도 노동자가 충분한 소득을 얻기 어려운 현실이다.

노인 돌봄, 장애인 지원, 청소, 간병, 가사 지원, 대면 서비스와 같은 일들은 누군가의 일상을 지탱한다. 이 노동이 사라진다면 가족의 생활은 흔들리고, 다른 노동자의 경제활동도 어려워지며, 사회 전체의 생산성 역시 영향을 받을 수 있다. 그럼에도 이런 노동은 낮은 보상과 불안정한 일자리의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한 경우가 많다.

우리는 노동의 중요성을 말하면서도 그 노동에 얼마를 지불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인색하다. 사회적으로 꼭 필요하다고 인정하면서도, 비용을 낮춰야 할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모순이 존재한다.

그렇다면 이들의 소득을 어떻게 늘릴 것인가?

가장 손쉬운 방법은 시간당 임금을 올리는 것이다. 그러나 서비스의 단위가격이 높아지면 그 비용은 누군가가 부담해야 한다. 민간 서비스에서는 이용자나 가족의 부담이 커질 수 있고, 공공서비스에서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재정 부담이 늘어날 수 있다. 비용 증가를 감당하기 어려운 이용자가 서비스를 줄이거나 포기한다면 노동자의 소득을 높이려던 정책이 서비스 수요의 위축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그렇다고 임금을 올리지 않는 것이 답은 아니다. 노동자의 소득을 낮게 유지해 서비스 가격을 억누르는 방식에는 명백한 한계가 있다. 노동자가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가격을 낮춘다면, 그 가격은 효율성의 결과가 아니라 누군가의 희생을 반영한 것일 수 있다.

따라서 필요한 것은 단순한 가격 인상만도, 무조건적인 가격 억제만도 아니다. 노동자의 소득을 높이면서 이용자의 부담을 관리할 수 있는 생산성과 보상 구조의 변화다.

바로 여기서 규모의 경제가 중요해진다.

4. 상품은 규모의 경제를 추구하면서 왜 서비스는 시간에 묶어두는가
상품을 생산하는 산업에서는 규모의 경제가 중요한 경쟁력으로 작용한다. 생산량이 늘어나면서 설비와 기술, 연구개발, 물류망 등에 들어가는 고정비용을 더 많은 상품에 나눠 부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생산과 유통을 효율화하면 상품 한 단위당 비용을 낮출 여지가 생긴다.

물론 생산량이 늘어난다고 언제나 비용이 낮아지는 것은 아니다. 생산능력의 한계나 자원 부족, 관리 비용의 증가가 발생하면 규모가 커지면서 오히려 비효율이 나타날 수도 있다. 그럼에도 규모의 경제를 통해 생산성을 높이고 비용을 낮추려는 노력은 현대 산업의 중요한 발전 동력이다.

기업이 같은 시간에 더 많은 상품을 생산할 수 있도록 기술과 공정을 개선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적절한 경쟁과 이익 배분이 뒷받침될 경우 상품 가격을 안정시키면서도 노동자의 임금과 기업의 수익을 높일 가능성이 생긴다.

여기서 핵심은 노동시간을 무한정 늘리는 것이 아니라 생산방식 자체를 개선한다는 데 있다.

그런데 서비스 노동으로 시선을 돌리면 상황이 달라진다. 서비스는 여전히 시간 단위로 거래되는 경우가 많다. 한 시간의 돌봄, 한 시간의 상담, 한 시간의 교육, 한 시간의 가사 지원처럼 노동자의 시간이 서비스의 판매 단위가 된다.

서비스 제공자가 숙련을 쌓아 같은 시간에 더 나은 결과를 만들어내더라도, 보상이 시간에만 묶여 있다면 그 생산성 향상이 노동자의 소득으로 이어지는 통로는 제한될 수 있다. 오히려 업무를 효율적으로 끝낼수록 다음 서비스로 이동하거나 다른 업무를 수행해야만 추가 소득을 얻을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물론 모든 서비스가 공장에서 생산하는 상품처럼 대량화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돌봄과 상담처럼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핵심인 서비스는 표준화와 자동화에 명확한 한계가 있다. 서비스를 빠르게 끝내는 것이 언제나 좋은 결과를 의미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이것이 서비스업에서 규모의 경제를 추구할 수 없다는 뜻은 아니다. 행정업무를 통합하고, 이동 동선을 합리화하고, 중복 기록을 줄이고, 기술을 활용해 불필요한 업무를 덜어내는 방식으로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 여러 서비스가 공유할 수 있는 기반시설과 지원체계를 구축하는 것도 가능하다.

상품 산업이 생산공정의 혁신으로 비용을 낮추듯, 서비스 산업도 노동자의 시간을 소모하는 방식이 아니라 서비스의 제공체계를 혁신하는 방식으로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

5. 서비스 가격을 낮추면서 노동자의 소득을 높일 수는 없는가
이 질문은 얼핏 모순처럼 들린다. 노동자의 소득을 높이려면 서비스 가격을 올려야 하고, 서비스 가격을 낮추려면 노동자의 인건비를 줄여야 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둘 사이에 반드시 충돌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생산성 향상으로 서비스 한 단위를 제공하는 데 필요한 사회적 비용을 낮출 수 있다면, 이용자가 부담하는 가격과 노동자가 받는 보상 사이의 관계를 개선할 여지가 생긴다.

예를 들어 요양보호사가 돌봄을 제공하기 위해 불필요한 이동과 행정업무에 많은 시간을 써야 한다고 가정해보자. 이동 동선을 개선하고 행정업무를 간소화하면 같은 노동시간 안에 더 많은 시간을 실제 돌봄에 투입하거나 노동자의 부담을 줄일 수 있다. 절약된 비용과 시간의 일부를 임금과 처우 개선에 활용할 수도 있다.

다만 효율화로 절감한 비용이 자동으로 노동자의 소득으로 돌아오는 것은 아니다. 사업자의 이익으로만 귀속될 수도 있고, 서비스 가격 인하에만 사용될 수도 있다. 따라서 생산성 향상과 노동자의 보상을 연결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공공서비스라면 정부가 서비스의 적정 원가와 노동자의 처우를 함께 고려해 수가를 설계할 수 있다. 민간서비스라면 계약과 가격 체계를 다양화하고, 생산성 향상의 성과가 노동자에게도 돌아가도록 보상 기준을 마련할 수 있다. 이용자의 부담이 지나치게 커지지 않도록 공공재정과 사회보험이 어떤 역할을 맡을 것인지도 함께 논의해야 한다.

결국 핵심은 단순히 서비스 가격을 올리느냐 내리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같은 비용으로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고, 그 과정에서 만들어진 가치가 노동자와 이용자에게 어떻게 배분되는가의 문제다.

이것이야말로 물가 안정과 소득 개선을 함께 추구하기 위한 현실적인 출발점이다.

6. 시간요금이라는 낡은 틀을 깨야 한다
이제 필자가 제기하고 싶은 핵심 주장으로 돌아가 보자.

서비스 요금은 왜 반드시 시간에 비례해야 하는가?

물론 시간요금이 합리적인 서비스도 있다. 업무의 범위와 소요시간을 사전에 확정하기 어렵거나, 고객이 실제로 제공받는 시간 자체가 서비스의 핵심인 경우에는 시간 단위의 요금이 필요하다. 또한 시간요금은 노동자가 일한 시간을 기록하고 정당한 보상을 요구할 수 있게 하는 중요한 기준이기도 하다.

그러나 시간요금이 유일한 가격 체계일 필요는 없다.

서비스의 특성에 따라 건별 요금, 정액제, 구독형 요금, 성과와 품질을 반영하는 보상, 기본보수와 추가보수를 결합한 방식 등을 검토할 수 있다. 어떤 방식이 적합한지는 서비스의 성격과 이용자의 필요, 노동자의 권리, 품질을 측정할 수 있는 정도에 따라 달라져야 한다.

예를 들어 일정한 업무 범위가 명확한 서비스라면 단순히 투입시간만 계산하기보다 서비스의 범위와 난이도, 필요한 전문성, 책임의 정도를 함께 반영할 수 있다.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행정업무는 표준화해 별도의 지원체계로 처리할 수 있다. 다만 건별 요금제를 도입하더라도 노동자에게 무리한 속도를 강요하거나 보이지 않는 추가 노동을 떠넘겨서는 안 된다.

특히 돌봄과 같이 사람의 상태와 필요에 따라 업무가 달라지는 분야에서는 결과만으로 보상하는 방식에도 위험이 따른다. 성과를 지나치게 강조하면 제공자가 돌봄이 더 어려운 사람을 기피하거나, 측정하기 쉬운 결과만을 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서비스 품질과 이용자의 안전, 노동자의 적정한 노동시간과 휴식을 함께 보장해야 한다.

시간요금을 깨부순다는 것은 노동시간을 무시하자는 뜻이 아니다. 노동자의 노동시간을 공짜로 취급하거나, 정해진 시간 안에 더 많은 일을 욱여넣자는 뜻은 더더욱 아니다.

그 의미는 분명하다. 시간을 노동의 가치를 판단하는 유일한 기준으로 삼지 말자는 것이다.

시간은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반드시 측정해야 할 대상이지만, 모든 서비스의 가격과 모든 노동자의 소득을 결정하는 유일한 척도가 되어서는 안 된다.

7. 노동자도 시간급의 한계를 넘어야 한다
이 문제는 서비스 가격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노동자의 임금체계와 근로시간 제도에도 같은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우리 사회는 근로시간을 조정하는 여러 방식을 논의해왔다. 유연근무제나 탄력적 근로시간제처럼 업무의 특성과 수요에 따라 근로시간을 배분하는 제도도 그중 하나다. 이러한 제도는 일정한 조건에서 노동시간의 배치를 합리화하고 일과 생활의 균형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근무시간의 배치를 바꾸는 것과 노동의 가치에 대한 보상 기준을 바꾸는 것은 서로 다른 문제다.

출근시간을 늦추고 퇴근시간을 조정한다고 해서 시간에 비례하는 임금체계의 한계가 저절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노동자가 정해진 시간 동안 일해야만 소득을 얻는 구조가 유지된다면, 시간의 배분은 유연해질 수 있어도 소득의 천장은 그대로 남을 수 있다.

그렇다고 시간급을 전면적으로 폐지하고 성과급으로 대체하자는 주장도 경계해야 한다. 성과를 측정하기 어려운 업무에서 성과급은 새로운 불공정을 만들 수 있다. 노동자가 통제할 수 없는 외부 요인에 따라 임금이 흔들릴 수 있고, 사용자가 성과 기준을 일방적으로 정하면 노동자는 더 큰 압박에 놓일 수 있다. 정해진 업무량을 초과해 일하도록 유도하면서도 추가 보상은 충분히 제공하지 않는 부작용도 발생할 수 있다.

그러므로 필요한 것은 단순한 임금체계의 교체가 아니라 보상의 원리를 다변화하는 일이다.

기본적인 생활과 노동의 권리를 보장하는 안정적인 보수를 바탕으로, 숙련과 전문성, 책임, 업무의 난이도, 서비스의 품질, 생산성 향상에 대한 기여 등을 적절히 반영할 수 있어야 한다. 동시에 근로시간과 휴식, 최저임금, 초과근로 보상 등 노동자를 보호하는 기준은 확고하게 유지해야 한다.

노동자가 더 빨리 일해야만 돈을 더 벌 수 있는 구조가 아니라, 더 나은 기술과 숙련을 갖추고 더 높은 가치를 만들어낼수록 정당한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시간의 길이가 아니라 노동의 가치가 소득을 결정하는 영역을 넓혀가야 한다는 것이다.

8. 규모의 경제가 노동자의 가난을 해결하려면
규모의 경제를 이야기할 때 반드시 경계해야 할 착각이 하나 있다. 기업이나 서비스 제공기관의 규모가 커지기만 하면 노동자의 소득도 저절로 증가한다는 생각이다.

현실은 그렇지 않다. 생산성이 향상되더라도 그 이익이 사업자의 수익으로만 돌아가거나, 시장 경쟁이 부족해 가격 인하로 연결되지 않을 수 있다. 반대로 가격을 낮추기 위한 경쟁이 노동자의 임금을 삭감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면 규모의 경제는 노동자의 삶을 개선하기는커녕 악화시킬 수도 있다.

규모의 경제가 사회 전체의 이익으로 이어지려면 생산성 향상의 성과를 어떻게 나눌 것인지에 대한 원칙이 필요하다.

첫째, 불필요한 비용을 줄여야 한다. 중복된 행정절차와 비효율적인 이동, 낡은 업무방식에 소모되는 시간을 줄이고 기술과 협업을 통해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

둘째, 절감된 비용이 노동자의 처우 개선으로 연결되도록 해야 한다. 임금과 수가를 설계할 때 실제 노동에 필요한 시간뿐 아니라 숙련과 책임, 적정한 휴식과 안정적인 고용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셋째, 이용자의 부담도 살펴야 한다. 노동자의 소득을 높이는 비용이 취약한 이용자에게 고스란히 전가되지 않도록 공공서비스와 사회보험의 역할을 검토해야 한다. 사회에 필수적인 서비스라면 그 비용을 개인과 가족에게만 맡기는 것이 적절한지 물어야 한다.

넷째, 서비스의 품질을 지켜야 한다. 생산성 향상은 더 적은 인력으로 더 많은 일을 무조건 해내라는 명령이 아니다. 불필요한 업무를 줄이고 노동자의 전문성을 제대로 활용해 같은 자원으로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자는 것이다.

규모의 경제는 단순한 비용 절감의 기술이 아니다. 그 성과를 어떻게 배분하느냐에 따라 노동자의 삶을 개선하는 수단이 될 수도 있고, 노동을 더욱 압박하는 수단이 될 수도 있다.

9. 물가를 안정시키면서 소득을 높이는 길
물가를 안정시키면서 노동자의 소득을 높일 수 있을까?

쉽지 않은 과제다. 특히 노동집약적인 서비스업에서는 임금이 오를 때 서비스 가격도 함께 오르는 압력이 나타날 수 있다. 서비스의 생산성이 충분히 높아지지 않는 상황에서 임금만 계속 인상하면 가격 상승 압력이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노동자의 임금을 억제하는 것으로 물가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그것은 비용을 낮추는 대신 생활의 부담을 노동자에게 떠넘기는 방식이 될 수 있다.

지속 가능한 해법은 생산성을 높이고, 생산성 향상의 이익이 노동자와 이용자 모두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제도를 설계하는 데 있다.

상품 산업에서는 기술 혁신과 대량생산, 물류 효율화 등을 통해 비용을 낮출 수 있다. 서비스 산업에서는 업무의 재설계, 전문인력의 효율적 활용, 행정비용 절감, 적절한 기술 도입 등을 통해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 다만 서비스의 특성상 생산성을 단순히 처리 건수나 소요시간만으로 측정해서는 안 된다. 돌봄과 교육, 의료처럼 품질과 관계가 중요한 분야에서는 결과의 질과 안전, 이용자의 만족도까지 고려해야 한다.

또한 물가를 움직이는 요인은 임금과 서비스 가격만이 아니다. 에너지와 원자재 가격, 주거비, 환율, 유통구조, 시장 경쟁 등 다양한 요인이 함께 작용한다. 따라서 시간급 개편이나 규모의 경제만으로 물가를 안정시킬 수 있다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노동의 가치를 시간에만 묶어두지 않고 생산성 향상을 통해 소득을 높이려는 시도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 노동자의 임금을 억누르지 않으면서도 서비스 제공에 드는 불필요한 비용을 줄일 수 있다면, 가격과 소득 사이의 충돌을 완화할 가능성이 생기기 때문이다.

물가 안정은 노동자를 가난하게 만들어 얻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더 효율적으로 가치를 만들어내는 방식으로 추구해야 한다.

10. 이제는 노동의 가격을 다시 물어야 한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노동을 시간으로 계산하는 데 익숙해져 왔다. 한 시간을 일하면 얼마를 받고, 하루를 일하면 얼마를 벌며, 한 달을 일하면 얼마를 손에 쥐는지 계산한다. 이 방식은 단순하고 익숙하지만, 모든 노동의 가치를 온전히 설명하지는 못한다.

같은 한 시간이라도 어떤 노동은 오랜 경험과 전문성을 필요로 한다. 어떤 노동은 큰 책임을 수반하고, 어떤 노동은 눈에 보이는 결과보다 사고를 예방하고 타인의 삶을 안정시키는 데 더 큰 의미가 있다. 그런데 보상체계가 시간의 길이만을 중심으로 설계된다면 이러한 차이는 충분히 반영되기 어렵다.

노동자의 삶을 개선하려면 더 오래 일하라고 요구하는 사회에서 벗어나야 한다. 하루 24시간이라는 한계를 인정하고, 그 안에서 더 많은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는 구조를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가치가 노동자의 소득으로 연결되도록 해야 한다.

서비스 가격도 마찬가지다. 시간요금이 필요한 영역은 유지하되, 그것이 유일한 방식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서비스의 특성에 맞는 다양한 가격과 보상체계를 설계하고, 생산성 향상과 노동자의 소득 개선이 함께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재가 요양보호사의 현실은 이 논의가 추상적인 경제이론에 그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돌봄 노동자가 시계만 바라보며 일해야 하고, 보호자가 시간의 경계를 두고 노동자와 갈등해야 하며, 정작 서비스의 질과 노동의 가치에 대한 논의는 뒷전으로 밀려난다면 제도를 다시 설계할 필요가 있다.

물론 시간급을 없애는 것만으로 가난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가격체계의 개편만으로 저소득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시간만큼만 돈을 벌 수 있다는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노동자의 소득을 높이는 데에도 구조적인 한계가 남을 것이다.

이제는 노동시간을 늘리는 방법이 아니라 노동의 가치를 높이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서비스 가격을 무조건 올리는 방법이 아니라 생산성을 높이고 그 성과를 공정하게 나누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노동자가 더 오래 일하지 않고도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경제를 만들어야 한다.

시간은 유한하다. 그러나 사람이 만들어낼 수 있는 가치는 시간의 길이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우리가 깨뜨려야 할 것은 노동시간의 기준 자체가 아니다. 노동의 가치와 소득을 오직 시간에만 묶어두는 낡은 틀이다.

시간을 더 팔아야만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회가 아니라, 더 나은 가치를 만들어낼수록 삶이 나아지는 사회. 서비스의 가격을 낮추기 위해 노동자의 희생을 요구하는 사회가 아니라, 생산성을 높여 이용자의 부담과 노동자의 가난을 함께 줄여가는 사회.

그런 사회를 만들기 위해 이제 우리는 시간급과 시간요금의 한계를 정면으로 바라봐야 한다.

더 오래 일하는 사회에서 더 높은 가치를 만드는 사회로. 시간에 갇힌 경제에서 생산성과 공정한 보상의 경제로. 이것이 노동자의 가난을 줄이고, 물가와 소득의 모순을 완화하기 위해 우리가 시작해야 할 변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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