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잘하는 약을 먹으면 서울대에 갈 수 있을까?”
누군가 이렇게 묻는다면 우리는 아마 웃을 것이다.
시험을 앞두고 책은 한 장도 펼치지 않은 채 공부 잘하는 약만 먹고 서울대학교에 합격하기를 기대한다면, 그것은 공부라기보다 기도에 가까울 것이다.
그런데 치매를 생각하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치매 어르신에게 약을 먹이면 기억력이 좋아질 것이라고 기대하면서, 정작 그분이 기억해야 할 정보를 반복해서 접하게 하고, 말하게 하고, 생각하게 하는 일에는 얼마나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을까.
나는 요양보호사로 일하면서 치매 어르신들을 가까이에서 만나고 있다. 의사가 아니기 때문에 약의 치료 효과를 전문적으로 평가할 수는 없다. 하지만 매일 어르신과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같은 질문을 반복하고, 가족 이름을 다시 떠올리게 하고, 날짜와 장소를 확인하게 하면서 한 가지는 몸으로 느끼게 됐다.
기억은 가만히 기다린다고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 몸은 우리가 먹은 음식과 물질들로 만들어진다.
그렇다면 우리의 기억은 무엇으로 만들어질까.
나는 감히 이렇게 생각해본다.
기억은 우리가 살아오면서 받아들인 정보들의 흔적이다.
어떤 사람의 이름을 알고 있다는 것은 그 이름이라는 정보를 과거에 받아들였다는 뜻이다. 가족의 얼굴을 알아본다는 것도 수없이 보고 경험하면서 만들어진 기억의 결과다.
그런데 기억이 흐려진 사람에게 약만 먹인다고 해서 머릿속에 없던 정보가 갑자기 완성된 형태로 생겨날 수 있을까.
물론 약물치료는 중요하다. 치매 치료에서 약물의 역할을 가볍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약을 먹지 말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약물치료와 함께 기억을 계속 자극해야 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시험공부를 생각해보자.
수능을 앞둔 학생에게 “공부 잘하는 약”을 먹이고 책을 읽지 말라고 한다면 어떻게 될까. 약을 먹었다는 이유만으로 머릿속에 한국사 연도가 생기고, 영어 단어가 떠오르고, 수학 공식이 저절로 만들어질까.
그럴 리 없다.
정보를 입력하고, 반복하고, 틀리고, 다시 배우고, 또 반복해야 한다.
기억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래서 치매 어르신에게 인지 자극훈련을 하면서 묘한 경험을 한다.
처음에는 가족 이름을 물어도 잘 대답하지 못하던 분이 있다.
“아드님 이름이 뭐예요?”
“…….”
잠시 침묵이 흐른다.
그러다가 다시 이야기를 나누고, 가족 이야기를 하고, 사진을 보기도 하고, 이름을 몇 번씩 반복해서 말하다 보면 어느 순간 이름이 나온다.
“아들이 누구죠?”
“○○이지.”
그 순간 나는 이상하게 반갑다.
대단한 일을 한 것도 아니다.
그저 이름 하나를 말했을 뿐이다.
하지만 옆에서 매일 지켜보는 사람에게는 그것이 결코 작은 일이 아니다.
어제는 못 말하던 이름을 오늘은 말한다.
또 며칠 뒤에는 다시 잊어버릴 수도 있다.
그러면 또 물어본다.
“아드님 이름이 뭐예요?”
다시 알려준다.
그리고 또 물어본다.
나는 이 과정을 반복하면서 생각한다.
이것이 바로 기억을 사용하는 일이 아닐까.
물론 이것을 가지고 내가 인지 자극훈련이 치매약보다 효과가 좋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실제 현장에서는 약을 함께 복용하는 경우가 많고, 어르신의 상태도 매일 달라진다. 따라서 요양보호사가 경험한 변화만으로 약과 인지훈련의 효과를 정확하게 비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있다.
인지 자극을 했을 때 어르신의 반응이 달라지는 모습을 현장에서 직접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 점을 우리가 너무 쉽게 지나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
치매 어르신에게 필요한 것은 약 한 알뿐일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람에게는 약도 필요하지만, 사람과의 대화도 필요하다.
정보도 필요하고, 반복도 필요하다.
자극도 필요하고, 익숙한 환경도 필요하다.
무엇보다 자신이 아직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경험이 필요하다.
가족 이름을 묻는 것도 단순한 퀴즈가 아니다.
“이 사람이 누구지요?”
“딸이에요.”
“딸 이름이 뭐예요?”
“○○.”
이 짧은 대화 속에는 얼굴과 이름을 연결하는 작업이 있고, 과거의 기억을 꺼내는 작업이 있고, 말을 통해 그 기억을 다시 확인하는 작업이 있다.
나는 그것을 거창한 치료라고 부르기보다는 기억의 운동이라고 부르고 싶다.
몸을 움직이지 않으면 근육이 약해지듯이, 뇌 역시 계속 사용해야 하는 것 아닐까.
물론 뇌는 근육과 같은 방식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뇌도 운동하면 무조건 강해진다”라고 단순화해서 말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적어도 기억을 사용하고, 대화를 하고, 새로운 정보를 접하고, 과거의 정보를 다시 떠올리는 활동이 치매 어르신의 일상에 의미가 있다는 것은 현장에서 충분히 느낄 수 있다.
나는 요양보호사로 일하면서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우리는 어르신에게 너무 많은 것을 잊지 말라고 요구하면서, 정작 기억할 기회는 충분히 주고 있는가?
“할머니, 이거 모르세요?”
“왜 이것도 기억을 못 하세요?”
이런 말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기억하지 못하는 것을 꾸짖는다고 기억이 돌아오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차분하게 다시 알려주고, 다시 묻고, 다시 대답하게 하는 것이 훨씬 낫다.
“따님 이름이 뭐였죠?”
“몰라.”
“괜찮아요. ○○예요. 한번 따라 해보세요.”
“○○.”
“맞아요. ○○.”
이렇게 한 번 더.
그리고 다음 날 다시.
때로는 같은 날 열 번을 물어야 할 수도 있다.
그래도 다시 묻는다.
나는 이것이 요양보호사가 할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일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물론 치매는 단순한 기억력 저하가 아니다. 인지기능 저하의 원인과 정도가 사람마다 다르고, 모든 어르신이 같은 방식으로 반응하는 것도 아니다. 어떤 분에게는 가족 이름 반복이 도움이 되지만 다른 분에게는 음악이나 산책, 그림, 간단한 계산, 옛날 이야기 같은 활동이 더 잘 맞을 수도 있다.
그래서 인지 자극훈련도 결국 사람을 보고 해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 내가 정말 말하고 싶은 것은 따로 있다.
우리는 약에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약은 몸의 조건을 개선하거나 증상을 완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약 한 알이 내가 살아온 모든 기억을 대신 만들어줄 수는 없다.
공부하지 않고 공부 잘하는 약만 먹어서 서울대에 갈 수 없듯이, 기억해야 할 정보를 아무것도 주지 않고 약만 먹는다고 해서 모든 기억이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나는 치매 치료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도 조금은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약은 기억을 위한 하나의 도구일 수 있다. 그러나 기억의 세계를 살아가는 것은 결국 사람이다.
사람이 말을 걸어주고,
사람이 이름을 불러주고,
사람이 사진을 보여주고,
사람이 과거 이야기를 꺼내주고,
사람이 기다려주고,
사람이 다시 묻어주는 것.
그것 역시 어르신에게는 결코 사소한 일이 아니다.
어쩌면 치매 어르신에게 가장 필요한 약은 약병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할머니, 이분이 누구예요?”
그리고 어르신이 잠시 생각한 뒤,
“우리 딸이지.”
라고 말하는 그 순간.
나는 그 짧은 대답 속에서 기억을 붙잡으려는 한 사람의 노력을 본다.
그리고 그 옆에서 다시 질문을 던지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나는 내일도 똑같이 물어볼 것이다.
“할머니, 따님 이름이 뭐예요?”
어쩌면 오늘도 잊으실 것이다.
그러면 다시 알려드리면 된다.
그리고 내일 또 물어보면 된다.
기억은 한 번 알려준다고 끝나는 공부가 아니니까.
약 한 알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도 경계해야 하지만, 반대로 인지 자극만으로 치매를 치료할 수 있다고 단정해서도 안 된다.
다만 내가 현장에서 느끼는 것은 분명하다.
치매 어르신에게 말을 걸고, 생각하게 하고, 떠올리게 하고, 반복하게 하는 일은 적어도 결코 헛된 일이 아니다.
그리고 나는 그 사실만큼은 현장에서 직접 어르신을 만나고 있는 한 사람의 요양보호사로서 이야기하고 싶다.
약을 먹는 것과 기억을 사용하는 것은 서로 경쟁하는 일이 아니다.
약을 먹고, 기억을 사용하고, 사람과 이야기하고, 다시 기억하고, 또 반복하는 것.
어쩌면 그것이 우리가 치매를 대하는 가장 인간적인 방법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