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환자 보호와 필수의료의 지속 가능성을 함께 고려한 신중한 보완이 필요합니다 -
대한신경과학회는 의료사고 피해구제 제도의 실효성을 높이고, 환자와 가족의 권익을 두텁게 보호하고자 하는 정부와 국회의 문제의식에 공감합니다. 의료분쟁 해결 절차가 보다 신속하고 투명해져야 한다는 방향성에도 이견이 없습니다.
그러나 현재 논의 중인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은 임상 현장의 특수성과 필수의료의 구조적 현실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측면이 있습니다.
특히 급성 뇌졸중, 중증 뇌전증, 신경계 응급질환과 같이 예후 변동성이 크고 시간 의존적 판단이 중요한 영역에서는, 과도하게 경직된 제도 설계가 오히려 방어 진료와 필수의료 기피를 심화시킬 우려가 있습니다. 대한신경과학회는 환자 보호와 필수 의료 지원이라는 입법 목적에 공감하면서도, 법안이 현장에서 안정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보완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판단합니다.
1. 설명 의무는 강조하되, 획일적 기한 규정보다는 의료적 현실을 반영해야 합니다.
응급 신경계 질환은 치료 직후 수일 내에 최종 예후나 인과관계를 명확히 판단하기 어려운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설명 시점을 일률적으로 짧은 기간 내로 강제하면, 충분한 의학적 검토 이전에 불완전한 설명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따라서 설명 의무는 충실히 이행하되, 그 시기와 방식은 의학적 원인 파악에 필요한 합리적 기간을 반영할 수 있도록 유연하게 설계될 필요가 있습니다. 아울러 환자와 가족에 대한 유감 표명이나 공감의 표현이 이후 민·형사상 불리한 증거로 사용되지 않도록, 이른바 사과법(Apology Law) 수준의 법적 보호 장치도 함께 검토되어야 합니다.
2. 전문가의 사전 검토 없는 배상 신청 확대에 대한 우려 및 판정기구 구성의 전문성 확보 필요
의료행위 과정에서 발생하는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 상당수는 질환 자체의 경과나 예측하기 어려운 임상적 특성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상 신청이 폭넓게 허용될 경우, 불필요한 분쟁이 증가하고 필수의료를 담당하는 의료진의 진료 부담이 오히려 더욱 커질 수 있습니다. 이에 따라, 객관적이고 전문적인 사전 검토 체계의 마련이 필요합니다. 또한 의료분쟁의 판단에는 고도의 의학적 전문성과 임상 경험이 요구됩니다. 따라서 향후 배상 판정과 관련한 위원회가 구성된다면, 다양한 임상 분야의 전문가가 충분히 참여하여 의학적 인과관계와 진료의 특수성이 충실히 반영될 수 있어야 합니다.
3. 국가 책임 없는 보상 구조는 필수의료 현장에 또 다른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필수의료는 이미 낮은 수가, 높은 업무 강도, 큰 법적 부담이라는 삼중의 어려움에 직면해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책임보험 가입을 의무화 하면서 의료 기관이나 의료인 개인에게 추가적인 부담을 주는 형태의 제도 개선은 필수의료 인력 이탈을 오히려 더욱 가속화 시킬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필수의료 분야의 배상 재원 및 보험 부담에 대해서 국가가 책임 있게 참여하는 공적 보상 체계를 명확히 하고, 실효성 있는 재정 지원 방안을 마련해야 합니다. 환자 보호를 강화하는 일과 필수의료 기반을 유지하는 일은 서로 대립하는 목표가 아니라, 함께 달성해야 할 공공 분야의 중요한 과제입니다.
대한신경과학회는 국회와 정부에 다시 한번 정중히 요청드립니다.
의료사고 피해구제의 필요성과 제도의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필수의료 현장이 감당해야 할 부담과 현실적 한계를 충분히 고려하여 법안을 보다 면밀히 보완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울러 의료현장의 전문가들과 충분히 협의하여, 환자 보호와 필수의료 유지라는 두 가지 목표가 조화롭게 달성될 수 있는 합리적 제도 개선이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대한신경과학회는 앞으로도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는 전문학회로서, 환자 권익 보호와 지속 가능한 필수의료 환경 조성을 위한 합리적 제도 개선에 적극 협력하겠습니다.
2026년 4월 8일
대한신경과학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