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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비 진보는 틀렸다, 국립대 등록금 무상와 서울대 10개 만들기 찢어버려야

2026-08-07 13:04 | 입력 : 강동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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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산이 오늘 내일인데, 지금 뭐하는짓인가. 사이비진보들이 선동하는 짓을 보면 울화통이 터진다. 얼핏 보면 국립대 등록금을 공짜로 하겠다는 정책을 잘하는 짓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잘 생각해보라. 국가주도의 성장전략시대도 아니고, 아니 국가 주도의 성장 전략시대라해도, 국립대를 육성해서 국가를 이끌게 하다는 것도 현실에서는 망상이라고 본다.


그렇다면 국립대 등록금을 공짜가 되게 하겠다는 것이 사회적 약자들에 대핸 사다리를 제공하는 것인가. 그것도 아니다. 내가 알고 있기로는 국ㄱ립대가 지방사립대보다. 부유한 자년들이 더 많이 들어가는 시대다. 성적순으로 입시제도가 운영되기에 글러수 바께 없는 것이다. 슬픈 진실은 부모의 소득과 자년의 성적이 어느정도 비례한다는 것 아닌가.


난 둘중에 하나로 바꾸라고 하고 싶다. 국립대 입학생들을 성적보다는 생활이 빈곤하거나 어려운 자녀들을 우선 선발하거고 등록을 공짤로 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국립대 등록금 공짜 정책은 찢어버려야 한다고.


서울대 10개 만들기도 같은 논리로 난 오래전부터 사이비 진보의 선동이라고 주장해왔다.


다음은 앞선 고나련 글까지 포함 챗GPT가 리라이팅 한 글이다.


국립대 등록금 무료가 교육의 사다리인가
― 서울대 10개 만들기와 국립대 무상교육에 대한 불편한 질문

얼핏 보면 국립대 등록금을 공짜로 만들겠다는 정책은 좋은 정책처럼 보인다.

대학 등록금 부담을 덜어주고, 청년들의 교육비 부담을 줄여주며, 지방 국립대의 경쟁력까지 높일 수 있을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책은 겉모습만 보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

나는 오히려 묻고 싶다.

국립대 등록금을 모두 무료로 만드는 것이 정말 사회적 약자에게 교육의 사다리를 놓아주는 정책인가?

나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국가 주도의 산업화와 경제성장이 절대적인 시대라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다. 국가가 전략적으로 특정 대학과 연구기관을 육성하고, 그곳에서 배출되는 인재를 국가 발전의 핵심 동력으로 활용하는 방식이 어느 정도 의미를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니다.

국가가 대학을 키운다고 해서 국가가 원하는 방향으로 인재가 배출되고, 그것이 곧 국가 경쟁력으로 연결되는 시대라고 단순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더 중요한 것은 누구에게 교육의 기회를 줄 것인가이다.

국립대 무료가 오히려 부유층에게 더 큰 혜택이 된다면?

우리 사회의 대학 입시는 기본적으로 성적 경쟁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우리가 애써 외면하는 문제가 하나 있다.

부모의 경제력이 자녀의 학업 성취와 어느 정도 연결되어 있다는 현실이다.

물론 가난한 가정에서도 공부를 잘하는 학생은 있다.

반대로 부유한 가정에서도 공부를 못하는 학생이 있다.

하지만 사교육, 주거환경, 부모의 교육 수준, 학습 공간, 정보 접근성 등을 생각하면 부모의 경제력이 자녀의 교육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부정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성적순으로 선발하는 국립대에 등록금까지 무료로 해준다면 어떻게 되는가?

결국 상대적으로 교육환경이 좋은 가정의 자녀들이 국립대에 더 많이 진학하고, 그들에게 국가가 다시 등록금까지 지원하는 구조가 될 가능성이 있다.

이것이 과연 교육의 사다리인가?

나는 오히려 이미 사다리를 올라온 사람에게 사다리를 공짜로 제공하는 것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진짜 교육의 사다리는 가난한 학생에게 놓아야 한다

국립대의 존재 이유를 다시 생각해보자.

국립대가 단순히 ‘좋은 대학을 싸게 다닐 수 있는 곳’이 되어야 하는가?

나는 그것보다 훨씬 중요한 역할이 있다고 생각한다.

사회적 약자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방법은 어렵지 않다.

나는 국립대 정책을 둘 중 하나로 선택해야 한다고 본다.

첫째, 국립대 입학생을 지금처럼 단순히 성적 중심으로 선발할 것이 아니라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정의 자녀, 교육환경이 열악한 학생, 지역의 취약계층 학생들에게 실질적인 교육 기회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선발제도를 바꾸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선발된 학생들에게 등록금을 전액 지원하는 것이다.

둘째, 그렇게 할 생각이 없다면 국립대 전체의 등록금을 무조건 무료로 만드는 정책은 재고해야 한다.

국가가 한정된 재원을 가지고 있다면 더욱 그렇다.

부유한 가정의 자녀에게도 똑같이 등록금을 지원하는 것과 가난한 가정의 자녀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전혀 다른 정책이다.

나는 후자가 훨씬 진보적인 정책이라고 생각한다.

‘서울대 10개 만들기’도 같은 문제를 안고 있다

나는 오래전부터 이른바 ‘서울대 10개 만들기’ 역시 비슷한 문제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해왔다.

겉으로 보면 매우 그럴듯하다.

서울대와 비슷한 수준의 대학을 지역에 여러 개 만들면 지역균형발전이 가능하고, 수도권 집중도 완화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이 정책에 대해서는 균형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도 있다.

하지만 나는 묻는다.

대학의 간판을 10개로 늘리는 것이 교육 불평등을 해결하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대학의 숫자를 늘리는 것과 교육의 기회를 평등하게 만드는 것은 다른 문제다.

서울대 하나를 열 개로 만든다고 해서 부모의 경제력에 따른 교육격차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지역의 모든 학생이 똑같은 교육환경에서 공부하게 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지역의 가난한 학생이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따라서 국립대 정책의 핵심은 ‘국립대를 얼마나 많이 키울 것인가’가 아니라 ‘국립대가 누구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할 것인가’가 되어야 한다.

이것이 내가 말하는 ‘사이비 진보’다

나는 진보정책이라면 무조건 국가가 돈을 더 쓰는 정책이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진보의 핵심은 한정된 사회적 자원을 누구에게 우선 배분할 것인가에 있다고 생각한다.

부자와 가난한 사람에게 똑같이 지원하는 것이 언제나 공정한 것은 아니다.

출발선이 다른 사람들에게 똑같은 지원을 한다고 해서 결과적으로 공정해지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출발선이 훨씬 뒤에 있는 사람에게 더 많은 지원을 해야 진정한 교육의 사다리가 만들어진다.

그런데 겉으로는 ‘교육복지’를 말하면서 실제로는 성적 경쟁에서 이미 유리한 학생들에게까지 똑같이 혜택을 나눠준다면, 나는 그것을 진보라고 부르기 어렵다고 본다.

그것은 진보의 외피를 쓴 보편적 지원일 뿐이다.

나는 그래서 국립대 등록금 전면 무료화에 앞서 먼저 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혜택을 가장 먼저 받아야 할 사람은 누구인가?”

가난하지만 공부할 기회를 얻지 못했던 학생인가.

아니면 이미 좋은 교육환경에서 공부해 국립대에 합격한 학생인가.

답은 너무나 분명하다.

국가가 교육에 돈을 쓰려면 교육의 기회를 더 많이 가진 사람에게 또 하나의 혜택을 주는 것보다, 교육의 기회를 갖지 못한 사람에게 새로운 사다리를 놓는 데 돈을 써야 한다.

국립대를 공짜로 만드는 것이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가난한 학생도 좋은 대학에 갈 수 있게 만드는 것.

그것이 진짜 교육복지이고, 내가 생각하는 진짜 진보정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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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명 |2024.11.14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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