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3/17)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전월세 임대차 계약갱신권을 최장 10년간 보장하는 ‘임대차법’ 개정에 대해 “개인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을 밝혔다. 그러나 불과 닷새 전인 12일 더불어민주당 민생연석회의에서 발표한 ‘20대 민생의제’에는 주택 임차인의 계약갱신요구권을 10년까지 확대하는 방안이 포함되어 있었다. 즉, 이재명 대표는 자신이 의장을 맡고 있는 기구에서 발표한 내용을 스스로 부인한 것이다. 이 대표는 “국민의 주거권 보장은 국가의 중요한 책무지만, 어떤 정책이든 시장 원리를 거스르면 정책 효과를 달성하기 어렵다”며 “민간 임대차 시장이 위축되어 세입자에게 불이익이 돌아갈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우려도 새겨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임대차법 개정이 전세가 폭등을 초래하고 세입자에게 불이익을 준다는 주장을 뒷받침할 근거는 명확하지 않다. 오히려 현행 임대차법이 세입자들의 권리를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면서 전국적으로 전세사기와 깡통전세가 속출하고 있으며, 전세 기피 현상까지 발생하고 있다. 따라서 임대차법은 보다 강화될 필요가 있다. 이에 주거권네트워크와 주택임대차보호법개정연대는 세입자들의 주거권과 현실을 외면한 이재명 대표의 임대차법 개정 반대 의견을 강력히 규탄한다.
현행 1회에 한정된 갱신권보장 만으로는 주거 세입자의 점유 안정성이 매우 낮다. 2023년 주거실태조사에 따르면 자가가구가 현재 주택에 거주하는 평균 기간이 11.1년인데 반해, 세입자 가구의 거주기간은 3.4년에 불과하다. 반면 독일, 프랑스, 미국, 일본 등 주요 선진국들은 세입자가 원하는 경우 계약 기간 이후에도 계약 연장이 가능한 ‘계약갱신청구권’과, 임대료의 과도한 인상을 제한하는 ‘전월세인상률상한제’ 등의 제도를 이미 시행하고 있다. 2021년 ‘OECD 국가의 민간임대시장에 대한 규제’ 보고서에 따르면, OECD 40개국 중 26개국이 민간임대주택의 최소한의 품질을 보장하기 위한 규제를 시행하고 있으며, 21개국은 안전, 건강, 위생과 관련된 임대주택의 최소 쾌적도(level of comfort) 기준을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은 허술한 임대차 제도로 인해 전세사기 피해자가 2만 8천여 명에 달하고 있다. 이미 상가 임차인의 영업권 보호를 위해 2018년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으로 10년 계약 보장이 이뤄졌다. 그렇다면 국민의 기본 권리인 주거권 보호를 위해 주택 임대차 계약 기간 역시 10년으로 확대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도 이재명 대표는 전국민의 40%에 달하는 무주택 세입자를 위한 임대차법 개정에는 반대 입장을 표명한 것이다.
더욱 큰 문제는 이재명 대표가 1주택자 종합부동산세 대폭 완화나 상속세 완화 등 부동산 보유 계층을 위한 정책에는 찬성 입장을 보이면서, 정작 세입자 보호를 위한 임대차법 강화에는 반대 입장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국민 대다수 서민과 약자의 권리를 외면한 기득권 중심 정치 행보가 아닐 수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시장 원리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분명하고 강력한 정책 추진 메시지다. 더욱이 주거권 보장은 헌법이 부여한 국가의 책무이며, 세입자 보호는 그 어떤 시장 원리로도 미뤄져서는 안 되는 문제다. 이에 주거·시민단체는 세입자들이 보증금을 떼이지 않고, 이사 걱정 없이 안전하게 거주할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을 강력히 요구한다. 이재명 대표는 더 이상 시장 논리를 앞세워 세입자 보호 입법을 방해하지 말고, 세입자들의 절박한 주거권 요구에 응답해야 한다.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기득권이 아닌 약자의 삶을 지키는 정치다. 만약, 이재명 대표가 이를 외면한다면, 더불어민주당의 존재 이유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 제기될 것임을 분명히 경고한다.
3월 18일 주거권네트워크, 주택임대차보호법개정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