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학회는 2024년 12월 29일 오전 9시 7분경 무안공항에서 발생한 여객기 참사에 대하여, 희생자께 깊은 애도를 표하며 유가족 및 생존자 여러분께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전합니다.
더불어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기에 비통한 소식을 마주하게 된 국민 여러분께 우리 사회 아이들과 가족의 정신건강을 위한 전문가 단체로서 위로와 함께 당부의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이 재난의 시기에 중요한 것은 유가족, 목격자와 생존자를 포함하여 이 사고로 충격을 받을 수 있는 많은 사람의 고통을 다루고 회복하는 일입니다. 여기에는 트라우마에 민감한 사회적 분위기와 전문적인 언론의 자세가 매우 중요하며, 특히 어른들조차 감당하기 어려운 비통한 소식을 다각도로 접할 수 있는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어른들의 세심한 손길 역시 필요합니다. 이번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와 관련하여 고통받는 모든 분들과 관련자들이 겪고 있을 트라우마와 이를 지켜보는 국민들의 고통이 회복되기를 바라며, 트라우마를 접한 아이들을 대하는 어른들에게 다음의 당부를 전합니다.
1. 아이들이 소화할 수 있는 정도 이상의 충격에 노출되지 않도록 배려해 주십시오.
방송에 노출되는 많은 사고 장면과 이에 대한 자세한 브리핑은, 아직 다양한 자극을 받아들여 소화하기 위한 뇌의 발달이 완성되지 않은 아이들에게는 지나친 자극이 될 수 있습니다. 특히 기질적으로 불안이 높은 아이들이라면 과도한 상상과 감정의 자극으로 수면, 식사 습관의 이상 등 다양한 문제 행동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어른들의 필요로 인해 무심코 틀어진 화면이나 방송의 내용이 아이들을 자극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또한 소셜미디어를 통해 우리 어른들의 시선 밖에서 아이들이 사실이 확인되지 않은 내용에 노출될 수도 있습니다. 과도하거나 잘못된 정보의 노출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해주세요.
2. 이미 사건을 다룬 화면과 글에 아이가 어쩔 수 없이 노출되었다면 최대한 노출이 반복되지 않도록 예방하고, 아이의 반응을 관찰하여 필요한 도움을 주세요.
아이마다, 발달 상태에 따라 충격에 대처하는 아이들의 반응은 매우 다양합니다. 엉뚱한 행동을 하거나 신경쓰지 않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고, 충격과 공포로 일상생활을 이어나가기 어려워할 정도로 심각한 고통을 호소하는 아이들도 있을 수 있습니다. 당장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다가도 상당한 시간이 지난 후에야 악몽이나 공포증 등으로 뒤늦게 후유 증상을 보이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따라서 아이들을 대하는 위치의 어른들은 이러한 반응들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시고 이를 세심히 관찰하여 주시고, 아이가 추가적인 고통에 다시 노출되지 않도록 배려해야 합니다. 아이들이 질문할 경우, 이를 막지 말고 아이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와 자세로, 사실에 입각한 정보만 대답해 주실 수 있는 선에서 간단히 알려주세요. 그리고 아이들에게 일상 안에서 가능한 안정감을 느낄 수 있도록 규칙적인 환경을 조성해 주세요. 어떤 감정이라도 표현할 수 있도록 격려하며 이를 비난하거나 무시하지 않습니다. 다만 일상생활을 이어가기 어려울 정도로 반복하여 사건에 관련된 질문을 하거나, 지나치게 몰두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전문적인 도움이 필요한 상태일 수 있으므로 더욱 주의를 기울여 살펴보고 필요하다면 전문가의 도움을 구합니다.
3. 어른들의 마음 상태도 함께 살펴보아야 합니다.
일상 생활에서 일어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나는 재난, 예상할 수 없었던 사고를 접하게 되면, 우리 어른들의 뇌 역시 이 충격을 소화하기 매우 어렵습니다. 게다가 소중한 생명이 이렇게 일시에 많이 희생된 상황에서는 유가족과 생존자, 목격자 및 관련자뿐 아니라 다양한 사회적 관계 속에서 많은 국민들이 이차적인 충격과 어려움을 맞닥뜨리게 될 가능성 역시 높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많은 의구심과 비난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모두의 애도는 모두 다르게 나타나기 때문에, 나와는 다른 형태로 애도하며 충격을 소화하는 반응에 대해 비난과 지적을 하며 다툼이 유발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반응은 그 어느 때보다 주변을 돌아보고 도우며 함께해야 할 이 시기에 지양해야 할 태도입니다. 지나친 세부 내용의 노출과 반복, 또는 명백히 잘못된 형태로 희생자 및 관련인들을 괴롭히거나 문제의 해결을 막는 형태가 아니라면, 이 비탄의 시기에 다양한 애도의 형태가 있음을 인정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더불어 어른들 역시 자신이 고통을 해결하고 있는 방식을 잘 살펴보고 몸과 마음의 건강 상태를 관리해야 합니다. 최대한 일상 생활이 깨어지지 않도록 관리하되 만약 스스로도 엄청난 충격과 고통을 다루기 어렵다고 느껴진다면 이러한 모습이 아이들에게 이차적인 자극이 될 수 있습니다. 다른 어른들의 도움을 요청하세요. 재난과 트라우마의 시기에는 서로를 위하는 지지와 사회적 연결감이 필요합니다.
마지막으로, 생존자의 온전한 회복을 기원하며, 다시 한 번 이번 참사로 희생된 분들과 유가족에게 깊은 애도와 위로의 말씀을 전합니다. 재난은 여러분의 잘못이 아닙니다. 저희 학회는 트라우마와 재난을 겪은 모든 이들 곁에서, 회복과 치유를 위해 함께하겠습니다.
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 이사장 천근아
재난과트라우마위원회 이사 배승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