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이 문제다. 위기에 빠진 이를 구한뒤, 그 댓가를 받는 것과 돈을 벌기 위해 위기에 빠진 이를 구하는 것을 현실적으로 우린 구별하기 힘들다. 의대증원 논란에서 명확해진 것중 하나가 의사들도 돈과 명예를 위해 의사가 된 것이지, 의사가 되고 나서 돈과 명예가 따라온 것이리고만 할 수는 없지 않느냐는 것이다.가치있는 일에 돈과 명예가 따라야 하는 것이 꼭 지켜지지 않는다면, 우린 가치와 돈과 명예를 같이 가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서론이 길다. 필자가 말하고 싶은 것은 만성적인 혈액부족 특히 혈액 최대의 공급원인 청년층의 부족에 혈액의 제한적인 돈거래를 허용하라고 하고 싶은 것이다. 일부에서, 아무리 위기상황에서도 교리상 수혈을 받지 않는다는 그릇된 종교인들처럼, 우린 혈액이 부족한데 돈을 주고서라도 헌혈자의 건강을 헤치지 않는 이상 사고팔수있어야하는데도, 돈거래는 좋지 못한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돈을 주지않고, 국가에서 헌혈하라 운동하고 심지어, 그래도 부족하면, 반강요 하다시피 헌열을 요구하는 것보다는 돈으로 사고 팔도록 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다.
대학다닐때, 용돈이 완전히 떨어진 필자의 한 동기는 당시에는 은어로 쪼롱이라고 하여, 극히 제한적으로 돈을 받고 헌열을 하기도 했다. 우리는 모두 쪼롱을 하는 대학생들을 상종도 못할 인간 이하로 보았고, 그 동기는 어디가서 쪼롱을 했다는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건 잘못되었다. 수혈이 제한적이라면, 건강을 해치는 행위라고 할 수 없다. 장기 매매와는 너무나도 다른 문제인 것이다. 지금 우리는 헌열에서 제대론된 논의도 없이 임상 논란도 제대로 된 논의없이 진행하고 있다.
건강한 학생들이 임상에 참여하고 이를 일부에서는 비윤리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물론 돈거래라고 해도 완전히 시장거래에 맡기자는 건 아니다. 국가가 개입해서 헌열자의 건강이나 자발적인 의사도 살피면서 하자는 것이다. 역으로, 혈액을 돈이 없어 구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줄일 수 있다.
우린 시대에 맞는 철학을 갖춰야 한다. 반화폐주의도 아니고, 돈만 숭배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혈액으로 만든 약품까지 확인해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