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급 승용차를 타고가면 가속도와 감속도는 느낄수 있지만, 일정한 속도로 달리면 속도감이 없다고 한다. 가속도나 감속도는 이전 시기에 속도감과 다른 속도감이기에 느낄 수 있지만, 일정한 속도로 달린다면, 차창 밖을 보아야 속도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속도란 상대값이기에 기준, 비교 대상이 없으면 느낄 수 없다고 볼 수 있다.
상대소득도 느끼지 못한다. 마치 화폐 환상처럼 말이다. 상대소득도 이성적으로 비교하고 따져봐야 느낄 수 있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요즘 논의되고 있는 기본소득제에 대해, 지속가능한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기본소득제는 현재까진 보편적 복지의 최첨단 제도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면, 세수는 어떻게 마련할 것이냐의 문제를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보편적 복지를 추구하면서, 세금은 간접세 위주로 걷는다면, 소득재분배의 효과는 거의 없을 것이다.
사실 정치인들 입장에선 세금을 거둘때, 간접세 위주로 걷으면 저항도 적고 여러모로 편하다. 그러나 자꾸만 그럴수록 가난한 사람들로부터 가난한 사람들을 부양하는 이른바, 소득재분배는 고사하고 노동의 가치만 더 추락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란 것을 경고하고 싶다.
즉 모든 국민들에게 100만원씩 돈을 찍어서 나눠주면, 좋을듯 싶지만, 사실은 전혀 좋지 않은 결과들만 양산할 것이다. 한번 잘 생각해보라. 부유하고 가난하고 소득 자체는 상대적 수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자들에게 좀더 많은 세수를 거둔다면, 똑같은 100만원을 모두에게 준다해도 소득재분배 효과는 살리고 소비 창출 효과도 크게 가져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토지공개념을 두고 사회주의이론이라고 치부해 버리는 지식인들을 보고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겠냐만은 그런 논리로 따져, 과거 교과서에 나오는 케인즈가 공산주의자로 몰렸었다는 이야기를 생각해보면, 우리의 사상은 100여년 동안 거의 진보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기본소득제도 좌우 진영논리로만 접근할 것이 아니라, 실리적 가치를 따져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이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