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력을 막을 수는 없다. 아직까지, 지구의 중력이건, 달의 중력이건 공기를 막는 것처럼, 특정의 물질로 칸막이를 친다해도 막아지지는 않는다. 열마저도 진공의 벽을 쌓으면 어느정도는 막을 수 있겠지만 말이다. 역시 시장경제에서 돈으로부터 자유로울 자는 없다. 진정으로 돈으로부터 자유롭게 하는 것은, 돈을 못만지게 하는 것이 아니라 웬만큼의 수입을 보장하는 것이다.
소설가도, 특별히 문학상을 목표로 책을 내지 않는 이상, 돈을 많이 버는 것을 목표로 한다. 하지만 뉴스나 드라마 등과는 다르게 그들은 진실을 왜곡한다는 경우가 적다. 요즘 뉴스나 드라마 등은 광고자본에 휘둘리는 상황은 드라마 등에서 에피소드 형태로 다루어지기도 하고 일반인들도 자주 거론하고 있다.
결국 가치와 가격의 조화는 수입원이 무엇에 근거를 두고 있느냐에 달렸다고 볼 수 있다. 하나의 예를 들어 의료인에 대한, 약 처방과 선택에 의해 돈을 못벌게 하는 것은 의료인의 수입을 차단하는 것이 아니다. 명의는 아무리 뭐라해도, 환자수가 늘고 결국 수입이 커질 것임은 당연하다.
유튜브 등 일부 언론의 수입이 광고 수주자와 분리되어서 운영되고 있기도 하다. 뷰 및 독자수에 수입이 배분되는 실험적인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더욱이 기본소득제까지도 회자되고 있다.
그러나 공무원의 보수는 집단적 보상의 성격이 강해서, 항시 말이 나오는게 복지부동이다. 능력과 노력에 대한 보상 차별이 주어지지 않은데서 비롯되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즉 수입과 경쟁의 방향이 조화를 이루어야하는 것을 우리는 목표로 삼아야 한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이들은 가치와 가격의 왜곡을 치유하는 방법으로 가치와 가격을 오히려 분리시키는 주장을 공정과 정의란 이름으로 말하고 있는 상황이다.
오히려 돈과 거리를 두고 살면, 궁핍하게 산다면 오히려 돈에 종속되기 십상이다. 돈으로부터 자유를 위해선, 적정한 수입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본다. 지금 언론시장을 정상화시키기 위해선, 돈이 최고의 약이다.
물론 사람에 따라서 돈에 대한 욕망은 물욕에 비례하고 조건이나 환경에 반비례함으로써 상대적이지만, 궁핍하게 만들수록 언론시장의 혼돈은 더 심화될 것이란 점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필자가 자주보는 한 언론은 간혹 생각해볼 수 있는 글을 게재한다. 그중에서 글을 잘쓰기 위해선 돈을 목표로하지 않고 소통하는 데 중점을 두라고 한다. 그러나 글을 잘쓰면, 보상이 주어져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명예나, 권위가 아니라면 돈말고 무엇이 있겠는가 말이다.
정치인을 비롯한 지도자급 인사들과 서민들은 다르다. 어차피 서민들중 정치인이나, 고위 관료를 할 수 있는 이는 없다. 즉 그들의 능력과 노력에 대한 보상은 돈이상 없다.
정치개혁을 아무리 열심히 한다한들, 서민들이 핍박받고 돈을 잘벌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는 말이다. 결국 돈이 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