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과 야당의 관계를 말한다면, 보완대체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주류와 비주류도 대체적이면서 보완적이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경쟁하며 협력하는 시대를 열어가야할 상황에서 이러한 시각변화는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대체성과 보완성은 소득 등 여러 조건이 바뀌면, 엇갈려 나타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대체적 경쟁관계에 있는 경우에도, 조건과 상황을 바꿔 자신의 조력자로 삼을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한 것이다. 달리기를 하더라도 혼자할때보다, 경쟁자가 있는 시합을 벌일때, 관객이 많아진다. 이같은 경우 상대자를 대체적 보완관계라고 할 수 있다. 정치 경제 사회 곳곳에서 과당경쟁 아니면 카르텔이 형성되어 있다고 느껴진다. 새로운 경쟁적 협력관계를 도모할 때다.
한번 상상해보자. 먼 미래에 우주선을 만든다면 원형이 되도록 하는 게 더 좋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마찰도 사실은 저항만으로 생각할 게 아니다. 만약, 공중에서 원운동을 하며 나아가는 물체는 공기의 마찰을 상당부문 앞으로 나아가는 데 활용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공기를 밟고 굴러가는 듯한 생각을 해볼 수 있는 것이다.
교육에서도 정시와 수시를 대체관계로 바라볼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정치현실상 100% 정시, 100% 수시 전형을 택할 수 없는 상황에서 정시 선발과 수실 선발 비중을 조정함으로써, 보완적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심정 같아서는 모든 구조를 뒤집어 엎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지금 이대로 가면, 성장율보다 건강보험료 등의 사회보험 및 조세 증가율이 더 커질 것은 불가피하다. 세원과 건강보험료 부과원을 개발하는 것도 필요하고, 건강보험이나 국민연금 같은 경우는 민간보험과의 관계를 완전히 새롭게 정립해야 한다.
개인적으론 민간보험이 경증의 소액질환을 맡고, 용돈의 연금이 되도록 맡고 공공의 사회보험이 기본 급여, 기본소득을 보편적으로 보장해주는 식의 개혁을, 그것도 서두르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불안과 우울이 교차하는 사회에서 대체 관계를 보완재로 바꾸는 지혜가 필요하다. 보완성과 대체성의 가치를 평가하는 방법은 따로따로 소비할때 발생하는 각각의 효용이 동시에 소비할때 얻는 효용보다 작으면 보완적 관계라고 할 수 있다. 즉 예를 들어 여당과 야당이 경쟁해서 정치 참여 수가 늘어나고 만족도가 높으면 그들은 보완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