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층의 막말이 마음의 상처가 되지만, 막말도 경우에 따라선 진실을 찾을 때가 있다. 연금 보험료 인상과 관련해서 당신은 자기 부모도 제대로 부양 못하는 청년들이 남의 부모, 심지어 애도 낳아 기르지 않은 노인들을 부양해야하는지 묻는다면, 무어라 대답할 것인가? 또 연금은 자기가 저축했던 댓가라고 하는 식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많은데, 앞선세대가 뒷선세대에게 강제로 사회적인 부양책을 지우는 것이라고 따진다면 무어라 대답하겠는가?
우리는 많은 이가 부가가치는 어디에서 발생하는지 망각한다. 당신이 저축한 것의 댓가는 어디에서 발생하는지 깊이 한번 생각했으면 한다. 결국 실물시장의 총생산물에서 나눠먹는 역할이 저축이란 것이다. 결국 저축한 돈이 투자가 되어, 실물생산의 크기를 키우는데, 기여한 댓가일뿐이지, 저축한다고 무조건 이자가 지급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곧 국민연금은 자신이 저축한 댓가라고 생각하기 전에, 사회적 연대를 통한 노인 부양제도라고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너무나, 잘못된, 경제 관념이 시장경제를 엉망으로 만들고 있다. 간혹 투기를 강력히 근절시키려면, 자본주의가 아니라고 하는 말들을 하는 이들, 그럼 암표도 단속하지 않는게 자본주의라고 할 것인가? 심지어 해방후 세워진 경자유전의 법칙도 자본주의제도가 아니라고 할 것이냐고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가족과 사회의 부양에서도 결국 부양자들의 수와 소득이 중요하다는 것을 말하고자 한다. 지금 우리 사회는 커다란 착각에 빠져있다. 월 100만원의 수입을 올리기 위해 저축하거나, 부동산을 임대하거나 연금을 드는 것과 노후에 나를 부양할 책임을 지는 아이 하나 낳아 기르는 것중 어떤게 더 큰 가치가 있는지 혼돈하고 있는 것이다.
막말로 돈이 없으면, 얼마든지 찍으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없으면, 얼마든지 만들수 있는가? 돈은 자기 자녀로부터 부양받는 것보다, 사회적 부양을 받을 수 있는 매개일 뿐이다. 그러나 자기 자녀건 사회적 연대에 의한 부양이건 젊은 사람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지금, (지식및 육체)노동의 댓가는 엄청나게 올라가야 한다. 출생 수가 적고 미래에는 노동인구가 줄것이란 점에서 상대적으로 시장경제가 정상적이라면, 노동의 댓가, 생명의 가치는 급격히 올라가야 하는 것이다. 물론 노동자들의 노동의 댓가는 반면에 기계화를 비롯한 로봇 등에 떨어질 수도 있지만, 로봇은 생산의 주체이지 소비의 주체가 될 수 없다는 점에서 경제적 역할에서 로봇은 인간의 완전한 대체는 이루기 어렵다.
이미 우리는 그런 논의를 벌이고 있다. 소득주도 성장에서도 말들 했지만, 임금을 높이면, 그 임금으로 다시 소비가 촉진될 수 있는 것은 노동자가 생산의 주체이며 동시에 소비의 주체이기 ?문이다. 로봇에게 임금을 주어 로봇이 소비를 촉진하지 못하는 것 아닌가? 따라서 이제 우리는 소비주도 성장시대를 그려나가야 한다. 되도록 어렵고 힘든 일을 인공지능 및 로봇에게 맡기고, 우리는 늘어난 소득으로 소비를 주도해야 하는 시대로 들어가고 있다.
지금 우리가 찾은 것은 무엇이고 잃은 것은 무엇인지, 냉정하게 생각해보는 게 필요하다. 그리고 출산율 제고에 우리 사회의 미래의 명운이 걸렸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특히 연금을 올리려거든 집값을 그만큼, 못올라가게 해야 한다. 후세대들에게 이중으로 착취하는 꼴은 만들지 말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