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삿상을 차리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보며 준서는 차려놓은 밥이 줄어들지 않는데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와서 드신다고요라고 물었다. 제삿날에는 제사를 지내다가 제사상만 놔두고 방을 비워둔다. 고인들이 친한 귀신들을 데리고 와 마음놓고 식사도 하고 이야기도 나누라는 뜻이다. 그리고 제사를 지내지 말라는 기독교인도, 귀신이 없기에 제사를 지내지 말라는 게 아니라 우상숭배기에 제사를 지내지 말라하는 것이다.
모두가 귀신이 있어 제삿날에 상을 차리면 귀신이 온다는 것이다. 누가 귀신을 본 적이 있는가. 그러나 우리는 제사를 지내지 않으면, 죄를 짓는 듯한 마음을 갖게 된다. 그런데 혹시 귀신이 있다고 믿어서가 아니라, 귀신이 있다고 생각하는 게 편하기 때문에 그런 건지 생각해볼 일이다.
분명 보이지 않는다고 사라지지는 않는다. 그리고 필자는 과거에도 글을 썼 듯이 질량 불변의 법칙을 생각하면, 질량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니 영혼도 없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변해가는 것이다. 특히 살아있을 때도 치매 등으로 기억을 잃는데, 죽어서도 같은 생각과 같은 기억을 가질 것이란 생각은 버려야 한다.
결국 앞에서 말한 제사나 귀신이 있다는 것에는 영혼이 불멸한다는 생각이 전제일 것이다. 그리고 제상상을 차리는 예의 등도 그런 전제로 예를 갖추는 방법이라고 할 것이다.
그런데, 과학도 그렇다. 자유낙하 속도만 하더라도, 진공속에서 실험할 수 없으니, 자유낙하속도는 시간에 비례한다는 생각하에 모든 것 구성해놨다. 그런데 그게 진실이 아니라, 그렇게 민든게 편한건 아닐까.
만약 상상을 해보자. 돌멩이와 크기와 모양이 같은 스티로폼(그러면 공기저항은 같기 때문에 없을때와 같다고 생각할 수 있다)을 떨어뜨리면 당연히 돌멩이가 먼저 떨어지는 것이다. 이를 통해서 자유낙하속도는 질량이 큰, 중력이 큰 것이 더 빠르다고 한다면, 안되는건가.
필자는 지쳐간다. 그 편한 믿음이 우리의 진보를 가로막고 있진 않는지 매우 불편한다.
무속인들이 정치와 경제를 예견하고 운명을 예언하고, 심지어 국정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것, 21세기의 대한민국이 이래도 되는가. 필자는 영혼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고 변해간다고 믿지만, 이건 아닌다. 종교도 과학도 끊임없이 합리화와 근거있는 상상을 펼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