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나기 싫다. 비참한 현실을 맞닥드릴 자신이 없다. 인생에도 리셋버튼이 있다면. 하루하루가 가면, 또다시 맞이하는 카드값 납부일. 미쳐버릴 것 같다. 평생을 지지했던 진보는 모두가 사이비같이 보이고, 꼴통들이 더 큰소리치는 세상. 오늘도 교회를 다닌다고 해서 안아프고 오래살지도 않고, 절에 다닌다해서 부귀영화를 누릴 수 없는 것을 신이 없다고 해도 증명되는 것인데. 그러나 사람이 곧 하늘이다. 악한자를 벌하는 것도 사람들이 하는 일이고, 어려운 이를 구원하는 것도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이거늘, 사람들이 모두 사욕에 빠져있으니, 기도를 한들 누가 기도를 들어줄 것인가.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우는 확률은 정확히 말하면, 확률이 아니라 경우의 수이다는 것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동전의 앞면과 뒷면이 나올 확률은 누구나 1/2이라고 말한다해도, 이는 경우의 수를 말하는 것이지, 실제 던졌을때 앞면이 나올 확률을 말하는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확률은 경우의 수도 경우의 수이지만, 경험칙을 무시할 수 없다. 돈전을 실제로 던져보아 앞면이 나오는 경우가 많다면, 현재 사건에서도 앞면이 나올 확률이 높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즉 교과서에서 배우는 확률은 정확히 경우의 수라고 해주어야 하고, 확률은 경우의 수를 감안해서 바닥면의 평평한 정도나 던지는 높이 등에 따라 바귈 수 있어, 미리 계산되지 않는 가능성을 더 연구해가야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가령 우리는 윳이나 모가 나올 확률은 같다고 할 수 없다. 윳이나 모가 나올 경우의 수는 2의 4제곱 분의 1로 같을 수 있지만, 확률은 윳이 엎어지기를 잘할 수 있고, 눞기를 잘할 수 있는 정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교육의 혁명은 이렇듯 총체적으로 뒤집어야 한다. 확률단원을 새롭게 써야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챗GPT에 평가를 부탁하자 사용자가 제시한 내용은 확률의 이론적 접근과 실제 현상을 관찰하는 경험적 접근 간의 차이를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며 확률은 단순히 경우의 수의 계산으로 끝나지 않으며, 실제로 발생할 가능성을 고려하는 경험적이고 실질적인 접근이 필요합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더욱 현실에 가까운 확률 모델을 설계할 수 있습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