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 순으로 줄을 세우지 않아야 한다. 어떻게 보면 평등의 원리를 구현하는 것 같다. 그래서 초등학생들에게 등수를 매기지 않는 것이 잘한 일일까. 또 사법 시험을 폐지하고 로스쿨 제도를 운영하는 것이 오히려 가난한 학생들이 검판사나 변호사 되기가 더 어려워진 것은 아닐까. 대입에서 정시를 줄이고 수시로 뽑는 결과 오히려 특정 지역과 서울 학생들이 명문대와 인서울 대학에 더 합격하게 된 것은 아닐까.
진보정권이 추진했던 많은 정책이 사회를 더 불공정하게 끌고 갔다면 너무나 비약일까. 국민연금 개혁안에서도 수급 구조를 바꾸지 않고 수입과 보장(소득 대체율)을 늘리면 더 많은 가난한 청년들이 연금 부담을 더 떠안게 되는데, 왜 진보는 구조개혁은 하지 않고, 사회보장율만 늘리려 하는지 난 이해를 못하겠다.
기초연금을 늘릴때, 한 부유한 노인은 나같이 부유한 노인에게 이깟 돈 준다며 혀를 찼다. 그러자 한 진보를 지지한 나의 지인은 똑같이 받고, 부유한 사람은 세금을 많이 내면 된다고 말한다. 그런데 국민연금은 어떤가. 나이가 많은 노인은 국민연금 보험료를 내지 않게 되는데. 그것을 왜 생각지 못하느냐는 말이다.
결론은 그렇다 사이비 진보를 먼저 몰아내야 꼴통들이 안 생긴다고.
지금은 정권이 불안한 듯하다.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은 곤두박칠고 탄핵해야 한다는 말까지 나오는 시국이다. 그러면 다시 사이비 진보가 정권을 잡게 되는가.
사이비 진보들이 나라를 이끈다면, 다시 꼴통들이 나온다. 부자에게 보험료를 물리지 않고 가난한 청년들이 부담하는 부양비로 부자들의 노후를 보장하는 안을 다시 내밀 것이 뻔하기에, 극우는 다시 정권을 흔들 것이라는 것이다.
장사는 안되는데, 부동산가격만 급등하게 해, 다시 극우들이 태생하게 되는 것이다.
각설하고 진보는 무차별이 평등한 것처럼 말하지만, 합리적 차별이 더 평등할 지 모른다.
가치와 조화되는 임금과 가격이 형성되게 하는 것은 결국 무차별이 아니라 합리적 차별이다. 그러나 오해는 말라. 몸 사용이 불편한 사람들에 차별 금지는 몸 사용이 불편한 사람들에 대한 사회적 안전망의 가치가 있기에 무차별의 평등이 아니라, 합리적 대가로서 조율되는 것이라는 것을.
평생 살아가다보면 누구나 장애를 가질 수 있다. 그것을 국가 보험에서 보장하는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