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을 앞두고, 늙은 부모님에게, 조카에게 용돈을 줘야할 것같은데, 돈이 없다. 당장 현금서비스도 만땅이 되었으니, 이를 어찌할 건가 말이다. 특히 설이 지난 후에는 막아야할 빚을 또 어디서 돌려막아야할지 막막하다. 설이 행복하지 않는 이유다. 잠도 깊은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예전에는 자다 깨더라도 바로 다시 잠이 들었는데, 자다 깨면 돈 생각에 다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불안 초초 긴장의 나날을 보내니 이게 우울증인가 싶은 일들이 자꾸만 발생한다. 그럼 나는 정신과를 다녀야할까. 가고 싶는 대학이 의대다. 의대 아니면 내인생은 폭망하는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공부를 해도 1등을 할 수가 없었다. 실수를 자꾸만 하여, 아는 것을 틀린 탓이다. 마침내 다가온 수능일 나는 인생 최대의 실패작을 만들고 말았다. 나는 정신과를 가야할까. 필자는 혁명가를 불러야할 사람들이, 아니면 은행이나 복지과에 가서 깽판을 쳐야 할 사람들이 정신과나 교회에 다니고 있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한다. 물론 자살위험군이 정신과의 도움을 받는 것을 반대하진 않는다. 아니 오히려 장려하고 싶다. 그럼에도 근본적인 원인은 복지과나 은행, 좀더 과감히는 혁명가를 부르거나, 그것도 안되면 복권을 사야한다고 생각한다.
지금 우리 사회는 자살률이 너무 높다. 그런데 자살율이 높은 것이 신체적인 호르몬 변화 등의 정신의학적인 우울증 등의 영향일 수는 있지만, 저마다 원인이 다른 것같지만, 경제사회적인 요인과 관계에서 나오는 것임을 지적하고 싶다. 또한 우울증도 지속적인 정신적 충격과 압박에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해결방법도 정신과를 가는 것과 병행하여 은행을 가고 복지과를 가고 그도 안되면 동지들과 혁명가를 불러야 한다는 생각이다.
초저출산율도 마찬가지다. 높은 자살율과 마찬가지로 행복하지 않는 삶이 원인일 수 있다. 살아가는게 너무나 힘들고, 고통스러운데 반해 살아감으로써 얻는, 획득하는 만족도나 행복은 너무 낮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힘든데 내 자녀까지도 이 힘든 생을 살아가라 하는 것이 결코 옳지 않다.
아 동물들도 마찬가지 아닌가, 척박한 땅에서는 번식을 하지 않거나 비의식적으로 임신이 중단되는 경우도 있지 않느냔 말이다.
어렸을때 추석과 설이 돌아오면 그렇게 기뻤다. 학교를 안가도 되는 것뿐 아니라, 먹을 것이며, 어떤 경우에는 때때옷이나 신발도 사주었다. 세배를 하고 세뱃돈을 받는 것은 정말이지 기쁜 일이었다. 그래서 설전에는 기쁘게 이발을 하고 목욕탕에 가서 때를 밀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 설은 왜 그때같이 행복하지 않는가. 적어도 설을 앞두고 상여금이며 떡값을 주는 기업들도 있지만, 정부도 설을 앞두고 돈을 대폭 풀어주는 것은 왜 생각지 못하는가. 설 하루만이라도 어른이나 아이들이나, 행복한 하루를 지낼 수 있게 말이다.
필자는 핵심적으로 상당수 정신질환이, 아니 정신질환자라 할 수 없지만 고통스러운 이들에게 의학적인 치료와 함께, 사회경제적인 치료가 닿게 하기를 이 사회를 지배하는 이들은 새겨보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