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회견문] 우리 환자단체는 의료인 의료사고 형사책임 면제를 내용으로 하는 「의료사고처리특례법」 제정 추진계획을 발표한 정부를 규탄하고, 정부에 대해 환자안전을 위협하고 위헌적인 「의료사고처리특례법」 제정 추진계획을 철회하고, 의료사고 피해자·유족이 의료인 대상으로 형사고소를 최대한 하지 않도록 유도하는 입법적·제도적 개혁부터 추진할 것을 촉구한다.
오늘 윤석열 대통령과 조규홍 보건복지부장관은 민생토론회에서 필수의료 붕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를 발표했다. 여기에는「의료사고 안전망 구축」방안이 포함되어 있지만, 핵심 내용은 의료인의 업무상과실치사상죄에 대해 「교통사고처리특례법」처럼 책임보험·공제조합에 가입하면 피해자의 명시적인 의사에 반하여 공소를 제기할 수 없고, 피해 전액을 보상하는 종합보험·공제조합에 가입하면 공소 제기 자체를 하지 못하도록 하는 「의료사고처리특례법」 제정을 정부가 주도해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⑴2009년 헌법재판소가 ‘중상해 결과가 발생한 교통사고’에 대해 공소를 제기할 수 없도록 한 「교통사고처리특례법」 관련 조항이 피해자의 재판절차진술권과 평등권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위헌결정을 내렸는데도 ‘중상해 결과가 발생한 의료사고’에 대해 특례를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⑵심지어 ‘사망의 결과가 발생한 의료사고’에 대해서도 추가 논의를 거쳐 특례 적용 여부를 결정하겠다며 포함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 ⑶‘중과실로 발생한 의료사고’에 대해서는 특례를 적용하지 않겠다고 명확하게 밝히지도 않았다. ⑷응급의학과·흉부외과·산과 등 의료사고 위험이 높은 필수의료 진료과의 의사·전공의 기피 현상 해소를 위해 「의료사고처리특례법」제정이 필요하다며 사회적 논의를 시작해 놓고는 슬그머니 모든 진료과의 의료사고 형사책임을 면제하는 특례법 제정으로 확대했고, 미용·성형 관련 의료사고에 대해 특례 적용을 제외할지 추후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⑸필수의료 진료과에 대해서는 업무상과실치사상죄 감면 방안을 특별히 추가 검토하겠다고 발표했다.
붕괴된 필수의료를 살리겠다고 정부가 마련한 대책이 전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도입된 적이 없는 의료인 의료사고 형사처벌 면제 특례법 제정 추진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우리 환자단체는 당황스러움을 너머 분노함마저 느낀다. 정부가 추진하겠다고 밝힌 「의료사고처리특례법」은 의료계에서 「교통사고처리특례법」을 벤치마킹해 마련한 법안으로써 교통사고로 인한 형사책임을 면제하는 특례를 인정하는 전제가 「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상 교통사고 관련 입증책임 전환 규정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가 추진하려는 「의료사고처리특례법」이나 관련 법률 그 어디에도 의료사고 관련 입증책임 전환 규정은 없다. 또한 「교통사고처리특례법」에서는 경과실에 의한 경상해만 형사책임을 면제하고 있으나 정부가 제정하려는 「의료사고처리특례법」은 「중과실로 발생한 의료사고」와 「사망 또는 중상해 결과가 발생한 의료사고」까지 형사책임을 면제하거나 면제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는 점에서 우려스럽다. 경과실에 의한 경상해 발생 업무상과실치상죄는 우리나라에서도 2010년 의료분쟁조정법이 제정·시행되면서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서 조정 또는 중재가 성립하면 형사처벌을 하지 않은 특례제도를 이미 운영하고 있다.
이에 반해 의료사고 피해자·유족의 권리구제 내용으로는 ⑴ 모든 의사 또는 의료기관의 책임보험이나 공제조합 가입을 의무화하고, ⑵ 감정부 구성 합리화·소수의견 기재 강화·수탁감정 개선·감정 절차 표준화 등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의 조정·중재 절차에 대한 신뢰성·공정성 제고를 위해 의료분쟁 조정·중재 제도 혁신을 병행하겠다는 것이 전부이다. 그러나 의료사고 관련 입증책임이 피해자·유족에게 있는 한 책임보험·공제조합에 가입한 최대 보상한도가 높아진다고 하더라도 피해자·유족의 상황은 현재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정부가 의료분쟁 조정·중재 제도 혁신의 내용으로 언급된 내용들도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이 이미 추진했거나 추진하고 있는 내용들이고 피해자·유족이 겪는 의료사고 입증의 어려움을 해소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형사고소를 통해 확보할 수 있는 피해자·유족의 의료사고 진실규명 관련 증거자료도 정부가 추진하겠다고 밝힌 「의료사고처리특례법」이 제정되면 더 이상 확보할 수 없게 된다. 이렇게 되면 의료사고 피해자·유족의 울분과 입증의 어려움은 더욱 커진다. 이는 의료인에게는 의료사고 관련 형사책임 면제라는 강력한 특혜를 주면서 의료사고 피해자·유족의 고통과 어려움을 실질적으로 해소하는 것에는 크게 부족하다.
의료사고 피해자·유족은 의료적 전문성과 정보 비대칭성을 특징으로 하는 의료행위에 있어서 의료과실 및 의료사고와의 인과관계 입증이 어렵고, 소송을 위해서는 고액의 비용과 장기간의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의료분쟁에 있어서 절대적 약자다. 그런데도 의료계에서는 고의 의료사고만 형사처벌하고 과실로 의료사고를 내어 환자가 상해 또는 사망하는 결과가 발생해도 형사책임을 면제하는 특례법 제정을 정부와 국회에 지속해 요구하고 있다.
의료사고 피해자·유족도 의료인이 신이 아닌 이상 의료과실은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의료인의 고의가 아닌 실수로 환자가 상해를 입거나 사망한 경우에도 의료인이 충분히 의료사고의 내용과 경위를 설명하고, 사과·유감·공감 등으로 애도의 표시를 하고, 동일 또는 유사한 의료사고의 예방을 약속하고, 적정한 피해배상을 신속하게 한다면 상당수의 의료사고 피해자·유족은 의료인을 용서하고 그 상황을 받아들일 것이다.
그러나 의료사고 현장에는 충분한 설명도, 애도의 표시도, 예방을 위한 환자안전사고 보고도, 적정한 피해배상도 거의 없거나 드문 것이 현실이다. 정부와 국회는 이것부터 먼저 입법화 해야 한다. 이보다 근본적인 해법은 의료적 전문성을 가지고 직접 의료행위를 한 의료인이 의료과실이 없거나 의료사고와의 인과관계가 없다는 사실을 입증하도록 하는 입증책임 전환을 입법화하는 것이다. 의료사고 피해자·유족은 중상해를 입거나 가족을 잃었는데도 가해자로부터 사과받지 못하고 수년에 걸친 소송기간 동안 입증의 어려움과 고액의 소송비로 울분은 토하지만 우리나라 정부는 이들의 울분과 트라우마 치유에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고 있다. 이것이 의료사고 피해자·유족이 우리나라에서 겪고 있는 생생한 현실이다. 이러한 이유로 의료사고 피해자·유족은 용서와 화해보다 형사고소와 형사소송을 선택하게 되는 것이다.
의료법에는 의료사고 발생 시 의료인이 의무적으로 설명하는 내용도 없고, 의료분쟁조정법에는 의료사고 피해자나 유족이 아닌 의료인이 의료과실이 없거나 의료사고와의 인과관계가 없다는 사실을 입증하도록 하는 입증책임을 전환하는 내용도 없다. 국회에 관련 법안이 발의되면 의사협회 등 의료계의 반대로 지금까지 국회를 통과한 적이 없다. 이것이 의료사고 관련 국회의 입법적 상황이다. 정부와 국회는 의료인 의료사고 형사책임 면제 특례법 제정 논의가 아닌 의료인의 의료사고 설명의무법, 의료인의 의료사고 안심 사과법, 의료사고 입증책임 전환법 등 의료사고 피해자·유족의 울분을 풀어주고, 입증책임 부담을 완화하는 입법적 조치부터 추진해야 한다.
정부와 의료계는 해외처럼 의료인의 의료사고 형사처벌 면제 특례법 제정 요구가 아닌 피해자·유족이 의료사고를 당해도 형사고소를 하지 않도록 하는 방안에 관심을 집중해야 한다. 의사도 사람인 이상 실수를 피할 수 없고, 위험하고 어려울수록 실수할 확률이 큰 의료행위의 특성상 의사가 실수로 의료사고를 발생했을 때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피해자나 유족에게 의료사고의 내용과 경위를 설명하고, 위로·공감의 표현을 하고, 적정한 손해배상을 했을 때 피해자나 유족도 의사의 실수를 용서하는 문화를 조성하는 것이 먼저다. 이에 우리 환자단체는 의료인 의료사고 형사책임 면제를 내용으로 하는 「의료사고처리특례법」 제정 추진계획을 발표한 정부를 규탄하고, 정부에 대해 환자안전을 위협하고 위헌적인 「의료사고처리특례법」 제정 추진계획의 철회, 의료사고 피해자·유족이 의료인을 대상으로 형사고소를 최대한 하지 않도록 유도하는 입법적·제도적 개혁부터 추진할 것을 촉구한다.
2024년 2월 1일
한국환자단체연합회
(한국백혈병환우회, 한국GIST환우회, 한국신장암환우회, 암시민연대, 한국선천성심장병환우회, 한국건선협회, 한국1형당뇨병환우회, 한국신경내분비종양환우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