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나는 너무나 가벼운 존재여서 발자국도 남지 않는 생의 길을 걷고 있는가. 아 나의 삶은 너무 무거워서 끌려가는 듯 살아가고 있는가. 우리의 설움과 분노는 언론에서 비중있게 다뤄준 적은 없는데, 가벼운 사람들의 말은 비중 있게 다뤄지고. 아 어쩌면 우린 비중을 잘못알고 있진 않을까. 같은 밀도의 콩 알갱이는 물에 가라앉지만, 콩가루는 물에 뜨는 것을. 비중을 밀도와 같은 말로 그렇게 쉽게 말할 수 있을까. 극한 호우라는 장맛비보다 떨어지는 속도가 다르고, 우주선 속의 물방울은 공중에 뜨고, 더 멀리 있는 밀물과 썰물은 달에 움직이는데. 아 비중은 부피분의 질량만이 아니라, 표면적이 클수록 더 작아지는 것이락 정의하면 어떨까.
지금까지 비중은 대표적인 다음 백과의 정의를 보면, 특정 물질의 질량과 같은 부피의 표준물질의 질량과의 비율이라고 한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표면적비에 반비례한다는 것을 생각하자는 것이다.
사람들은 말한다. 이렇게 활동적으로 살다가 죽는날은 갑자기 자다가 죽었으면 한다고. 정말이지, 배가 가는 저 앞에 물떠러지가 보인다면, 그 얼마나 고통스러울 얼마나 고통스러울 것인가.
이대로면 파산인데 하면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우리는 지금 무엇하는가. 사람들은 저출산률에 20년 30년이면, 닥칠 위기를 말하지만, 그러나 말뿐, 극한 이기심에 아무것도 하지 않거나 할 수 없는 상황인 듯하다.
이래 망하나, 저래 망하나 망한 것은 매 한가지인데.
만약 우리가 도를 닦아 모두가 도인이 될 수 있다면, 지금껏 경제나 과학기술발전 방향은 모두 잘못된 것이다. 또한 종교에서 말한 것처럼 우리 삶이 그렇게 될 수 있다면, 역시 지금의 경제 및 과학기술 발전 방향은 잘못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인생의 목표가 행복이라면, 도를 닦거나 종교를 가져서 모두가 행복할 수 있다면, 과학기술이나 경제발전 방향이 잘못된 것이지 않는가 말이다.
쉽게 말해 우리가 연구하고 연구하다보면 축지법을 할 수 있다면, 교통수단을 개발할 게 아니라, 축지법을 연구해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또 텔레파시를 할 수 있다면, 핸드폰을 개발할게 아니라 텔레파시를 연습해야 하는 것 아니냔 말이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공상이다. 기도를 통해서 이룰 수 있다면, 기도를 열심히 연구해야겠지만, 우리는 많은 부분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을 공부해서 이렇게 왔다. 그리고 그것은 항상 혁신을 통해 보다 나은 사회로 인도하는것에 이바지 해야하는 것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