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서 하늘의 문이 열린날, 가물거리는 어린시절 기억속의 그가 다가와 혼자말인것도 같지만 분명 나를 보고 중얼거리듯 말했다. 울지마 네가 울면 비오니까 울지마. 어렸을때, 때론 무섭고 어떻게 보면 구걸하여 먹고 사는 듯한 존재로 인식된 당골래, 그였다. 흰머리가 드문드문 보였지만, 약 20년전 내가 어렸을때 기억으로 무서운 눈초리며, 한번도 빨지 않고 계속 입어왔던 작업복 같은 옷을 걸친 모습이 거의 그대로였다. 이글은 의과학보다 인문사회과학에 가까운 글이다.
우리 고을의 당골래는 동네 잔치가 있는 날은 누가 기별을 해주는지, 아니면 하늘에서 알려주는 것인지, 결코 빠뜨리지 않고 찾아왔다. 특히 하늘의 문이 열린 날이면, 그는 장의사만큼 소중한 존재였다. 결코 나름의 철칙이 있었던지, 공짜밥은 먹지 않고 청소를 해주거나 불을 때주는 일을 자처하고 대신해 밥한술 달라고 청을 하는 존재였다.
학교 교육을 받는 학창시절에는 당골래의 존재를 잃어버리고 애써 투명인간으로 취급했던 것이다. 특히 고향을 떠나 학창시절을 보내고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다보니, 그동안 당골래를 볼수 있었던 적이 없었다. 우리 고을의 당골래는 사전에 나와있는 점쟁이는 아니었다. 고철 등을 줍거나, 집지이 가서 얻거나 해서 배를 채우기도 하고, 일을 도와주고 밥 한술 얻어먹는 존재였다.
신체는 겉으로 보기엔 멀쩡한데 직업을 갖거나 지속적인 돈벌이를 하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특히 점을 쳐주는 지는 모르지만, 꼭 넋나간 듯한 말을 할때가 많았다. 거의 혼잣말을 궁시렁궁시렁하며 돌아다녔다. 동네 어른들은 아이들이 보챌때, 울면 당골래보러 데려가라한다는 말로 겁을 주는 그런 존재였다. 그런 자의 인식을 단 하마디로 표현하기 어렵지만, 하늘의 문이 열린날 나에게 했던 말, 네가 울면 비온다는 말로 이해할 수 있을까?
나이들어 심적으로 약해졌을땐, 비가와서 슬픈게 아니라, 우리가 슬퍼하면 비가 온다는 말이 다가올 수도 있다. 세상은 상호연관되어 있다. 나비가 날개짓 한것이 태풍이 될 수 있다하는데, 눈물이 비가 될 수 있는 현상도 있지 않을까 망상에 망상을 거듭해보지만, 그건 너무 나간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골래는 학교교육에 없다고 우리 현실에 없는 존재는 아니다. 대개 사이비에 넘어가는 경우를 보면, 몰리면 사채를 쓰는 이치와 마찬가지로, 심적으로 괴로울때 접근해온다는 것이다. 그리고 높은 상호연관성을 우리는 사전에 교육받지 못하고 현실에서 겪다보면 홀릴 수 있다는 것이다.
호기심반, 걱정반으로 근래의 당골래를 고향 지인들께 물어보니, 국가에서 지원금을 받고 요양시설에서 따뜻하게 잘먹고 즐거운 노후를 보내고 있다한다. 이제 그는 울면 비온다는 말은 하지 않으려나. 그 얼마나 두려움속에서 살았을지도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