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심이 꼬리를 물고, 몰려왔다. 답답하다. 불안은 미래에도 우리 몸과 마음을 온전히 지키기 위한 신호라 한다면, 불안이 사라질 수 없지만, 겪지않아도 될 과도한 불안감과 지속된 불안은 우리를 망가지게 할 것임은 뻔하다. 이글은 의과학보다 인문사회학에 가까운 글임을 재차 밝힌다.
우리가 겪고 있는 불안의 요체를 자의적으로 분류해보았다. 그랬더니 4대 주요불안이 핵심요체였다. 일자리불안, 주거불안, 노후불안, 건강불안이었다. 그런데 이 4대 불안 요소는 서로가 연결되어 있어, 하나라도 망가지면 다른 불안요소를 자극하게 되어, 결국 4대 불안 요소를 모두가 같이 풀어나가야한다고 본다.
주류와 비주류경제학 이론의 가장 핵심적인 차이는 시장 가격이 안정적이냐, 불안정적이냐로 보는데 있다. 예컨대, 아파트 가격이 정부의 개입없이도 안정될 수 있느냐라고 본다면, 주류 경제이론에 도취된 것이라고 넘겨짚어 볼 수 있고, 강력한 정부개입이 있어야 아파트 가격을 안정시킬 수 있다고 본다면 비주류 이론을 깊이 고민해볼 수 있는 것이다.
과거의 극단적인 비주류이론가라면, 정부 개입이 아니라, 뒤집어 엎어버리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가격이 아니, 정부의 계획과 명령에 의해 자원의 생산과 배분, 소비를 끌고 가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해묵은 분류를 뭐하러 설명하는 것인가?
그것은 우리 사회에 퍼져있는 불안이 어디에서 오는지 보자는 것이다. 그건, 외환위기 이후 심하게 퍼진 신자유주의 물결에서, 또 정치지도자들의 왜곡된 이상과 사상에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앞에서 설명했듯이 주류경제학에 도취되면, 불안이란 실체를 존재하지 않거나, 그다지 큰 문제로 생각하지 않을 수 있다.
그렇다고 비주류 이론이 옳은 것도 아니다. 캐캐묵은 규제로, 한번 부자가 못되어 있다면, 아주 못살지는 않지만, 부자될 기회가 사라져버린 것은 대개가 비주류 정책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어쨌든 주류이론은 일자리 불안도, 해고가 되면, 곧바로 취업할 수 있고, 시장 전체는 일정률의 고용율이 항상 유지되기 때문에 불안할 필요가 없게 된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극심한 양극화에 부자는 더 부자가 되고,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해지지 않았던가. 심지어, 집값은 청전부지로 올랐고, 미래에도 오를 것같아 주거의 불안정은 급기야 청년세대의 근로의욕까지 갉아먹지 않았던가. 모든 불안은 미래에서 오지만, 시장 가격의 안정성을 회복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이제라도 운동의 가치를 다시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지금의 제도권 지도자들에 대해 이제 그만큼 실망을 가졌다면 말이다. 사회운동과 신체운동은 4대불안을 줄이는 결과를 가져올 것으로 생각한다. 동시에 불안 마케팅, 집값이 더 오를테니 지금 집을 사야한다는 식의 불안 마케팅을 일소하는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