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와 호르몬 그리고 정신건강(23)
경제사회적인 부정적 정신적 충격에 호르몬의 변화가 왔는지, 호르몬의 변화에 부정적 감정이 발생했는지, 쉽게 판가름할 수 없다. 그러나 감각을 포함한 내외부로부터 발생되는 수많은 정보에 의해, 우리의 감정과 지적 능력은 큰 변화를 가져온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이글은 의학보다도 인문사회에 가까운 글임을 밝힌다.
슬픈 정보에 슬퍼지고, 치유작용으로 보이는 눈물을 흘리게 되는건지, 눈물을 흘려서 슬퍼지는 건지는 너무나 확연하다. 잠깐 논외로, 슬플때는 울어버리면 마음이 좀 가라앉는 경우를 느낀 사람은 많을 것이다. 그래서 우는 것은 치유작용의 하나라고 보여진다.
하지만 역으로 기뻐서 웃는게 아니라, 웃어서 기뻐지는 것도 무시 못하는 일일 것이다. 결국 부정적 정보와 감정의 변화는 서로의 상승작용을 통해, 더욱 불안해지고 슬퍼질 수 있다고 보여진다. 그렇더라도, 신체적 변동을 각종 요법을 통해 해준다면, 부정적 정보가 들어가더라도 감정의 변화가 줄어들 수 있을 것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수많은 부정적 내외적 정보, 희망없는 절망상태, 가령 빈궁 질환 갈등 등을 먼저 치유하거나, 긍정적 정보를 주입한다면 개인적인 생각에, 후행적 호르몬 변화를 조절하는 것보다 효과가 충분히 크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말장난에 가깝지만, 정신질환은 우선은 지적 능력보다도 감정에 더 큰 영향을 끼친다. 지적능력은 감정능력에 따른 영향에 제한적으로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불안하고 흥분한 상태에서는 기억력마저 온전치 못한 경험을 하는 이가 많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지적능력이 떨어진다고 해서 불안하고 흥분한 상태가 발생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물론 지적능력이 우수한 사람이 불안감이 클 수도 있다. 그것은 주입되어, 분석되는 정보의 크기에서 발생됐다고 볼 수 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이 있지 않는가 말이다. 어쨌든, 정신질환의 상당수는 부정적 정보 및 부정적 정보로 해석하는 내외적 정보에 의해, 호르몬이나 신체적 변화를 통해, 감당할 수 없는 불안감과 슬픔이 발생하지 않았나 생각해볼 수 있다.
이건 거창하게 진화론의 관점이거나, 종교적 관점으로 구분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르몬을 조절하는 방법과, 마음(종교) 및 경제사회적인 환경(정보)를 조절하는 방법을 찾는 것으로 구분하다면, 인문학적인 방법이라면 개인적인 마음을 고치는 것보다 더 중요하게는 경제사회적인 환경을 바꾸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막말좀 한다면, 사실 저출산이란 사회의 자살행위라 하면, 미친놈이라고 할 것인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