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연대는 11월 20일 성명을 내서 일· 가정양립 운운하며 간호사에게 반쪽짜리 일자리 제안하는 복지부와 더불어민주당 규탄한다 등을 밝혔다.
다음은 성명 원문이다.
지난 11월 16일, 보건복지부 후원과 대한간호협회·대한병원협회의 공동주관과 함께 더불어민주당 강병원, 허종식, 이수진 의원, 국민의당 최연숙 의원의 주최 하에 16일 ‘일·가정 양립을 위한 다양한 간호사 근무형태 도입 토론회’가 열렸다. 토론회는 간호사의 처우를 개선하고 일·가정 양립이 되기 위해서는 다양한 교대근무1) (단축시간제 혹은 시간선택제, 휴일전담제, 2교대제, 고정근무제, 재량근무제)가 도입되어야 한다는 주장과 복지부의 시범사업 계획안으로 구성되었다. 이번 토론회는 너무나 많은 환자를 보다가 일상을 제대로 유지하지 못해 일을 그만둬야만 하는 간호사들의 현실을 멋대로 왜곡하고 더 값싸게 간호사를 이용하기 위한 방편을 논의했다는 점에서 파렴치하기 짝이 없다.
* 간호사 1명당 환자 수 배치기준은 나 몰라라
토론회의 제안내용은 두 가지 지점에서 치명적인 문제가 있다. 첫 번째로 간호사들이 인력이 없어 높은 강도와 장시간 노동으로 임신·출산·육아를 일과 병행하지 못한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한국 간호사가 열악한 노동조건 속에서 일하고 있다는 사실은 너무나 유명하다. 간호사 1인당 담당 환자수를 보면, 미국의 경우 4~5명, 일본 7명, 영국은 8.6명인데 비해 한국은 15~20명 정도 담당하고 있다. 인구 천 명당 활동간호사 수는 6명으로 OECD 평균 9명에 비해 2/3 수준이다. 이마저도 간호조무사를 포함한 수치라 이를 제하면 실제로는 3명 정도로 평균보다 6명이나 적다.
토론회 발제자들은 해외 선진국 사례를 들어 다양한 시간선택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떠들었으나, 한국과 해외의 간호사 당 환자 배치기준 따위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시간선택제 등의 도입을 주장한 것이다. 유연근무의 전제조건으로 정규직으로 채용되어야 하고 승진 등에서 전일제 정규직과 차별이 있어서는 안되는 점 등을 제시했지만, 간호사 1명당 환자수가 줄지 않은 상황에서 근무형태만 달라진다고 해서 간호사들이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일하는 문제가 바뀌지는 않는다.
* 여성은 육아를 전담해야 하니, 반쪽짜리 일자리면 된다?
토론회에서 내놓은 대책의 두 번째 문제는, 여성을 육아를 담당해야하는 주담당자로 보고 있다는 점이다. 여성 간호사에게 필요한 것은 육아를 하면서도 그에 따르는 경제적인 비용을 책임질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한 임금과, 자신의 경력을 꾸준히 개발할 수 있는 제대로 된 일자리다. 모든 사업장에 어린이집 설치도 제대로 못해내면서, 간호사의 노동시간을 병원의 입맛에 맞게 뚝 자르고 경력을 제대로 개발할 수 없을 정도로 엉망인 일자리를 만들어내려는 정부·여당의 수작질에 분개하지 않을 수 없다. 육아와 일을 양립할 수 있다는 감언이설로, 여성에게 육아의 책임을 헐값에 떠넘기지 마라. 아무리 정권 말기라 하더라도, 대선부터 정권 내내 페미니스트를 자임했던 현 대통령 재임 시기에 이런 정책이 여성 노동자를 위해 나왔다는 건 황당함을 넘어 참담하다.
* 병원현장과 괴리된 <간호사 근무형태 시범사업안>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는 복지부
더 심각한 문제는 이번 토론회에서 위와 같이 현장과는 전혀 거리가 먼 문제적인 근무형태와 관련해 시범사업 계획안까지 제안했다는 점이다. 주발제자인 김진현 서울대병원 간호학과 교수는 <간호사 근무형태 시범사업방안>을 통해 복지부에서 어떤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어느 정도의 예산을 들여 진행할 것인지, 심지어 고용비용 지원금의 청구와 지급절차 및 인건비 지원 규모까지 정리하여 발표했다. 이에 복지부 의료자원정책과 송영조 과장은 “국회에서 예산을 책정해 줄지는 모르겠지만 예산이 확정되면 유연근무제 시범사업을 잘 진행해 나가겠다"2) 고 발언했다.
간호사가 이직과 경력단절을 줄이고 일과 가정을 양립하는 방법은 명확하다. 인력충원을 통해 간호사가 봐야할 환자수를 줄이고 지금까지 주지 않았던 시간외수당과 체계적인 간호사 교육 등을 제대로 제공하면 된다. 정답을 알면서도 외면하는 복지부가 제일 문제다. 노동조건 변화 없이 반쪽짜리 일자리를 들이미는 것이 아니라, 어떤 간호사도 자신의 경력을 버리지 않은 채 일을 지속하면서도 아이를 낳아 기를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우선이다. 복지부는 도대체 언제까지 외면할 셈인지 참으로 궁금하다.
간선제로 10년 이상 단독후보로 출마해 회장을 당선시키며 현장 간호사를 대표하지 못하는 간호협회, 자기들이 필요한 때에만 불렀다가 일없으면 보내는 꼼수 일자리를 통해 간호사를 더 값싸게 이용하려는 병원, 그리고 이를 총체적으로 지원하는 복지부와 여당의 입장이 국회토론회를 통해 만천하에 드러났다. 뻔뻔함도 정도가 있다. 간호사를 위한다는 말로 자본을 위한, 자본에 의한 정책을 진행시키려는 간호사 근무형태 시범사업방안을 당장 집어치워라. 간호사에게 반쪽짜리 일자리가 아닌 제대로 된 일자리를 제공하라!
2020.11.20.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