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하는 간호사회는 11월 20일 유연근무제를 비판하는 입장서를 냈다.
다음은 입장서 원문이다.
지난 16일 더불어민주당 강병원, 허종식, 이수진 의원과 국민의당 최연숙 의원이 공동으로 주최하고, 대한병원협회와 대한간호협회가 주관한 '일·가정 양립을 위한 다양한 간호사 근무 형태 도입'을 위한 토론회가 개최됐다.
토론회에서는 간호사의 평균 이직률이 15.4%로 대부분이 여성이다 보니 임신, 출산, 육아로 인해 가정과 3교대 업무의 양립이 어려워 이직을 선택한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경력단절을 막기 위해 단축시간제, 휴일전담제, 2교대제, 고정근무제, 재량근무제 등 다양한 근무 형태(유연근무제)가 도입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구체적인 시범사업 실행방안과 실제 도입한 사례도 제시했다. 토론회에 참여했던 송영조 보건복지부 의료자원정책과 과장은 “현재 국회에서 유연근무제 관련한 예산을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토론회 역시 임상 간호사들이 이해당사자 임에도 불구하고 논의과정에서 배제된 채 정부 관료, 병원 간호관리자, 의사, 기자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렇다 보니 결국 ‘다양한 근무 형태 도입’이라는 임상의 현실과는 너무 동떨어진, 간호사들이 동의하기 어려운 내용만 되풀이되고 있다. 2018년의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자료에 따르면 간호사의 주유이직사유는 낮은 보수수준, 과중한 업무량, 열악한 근무환경에 의한 것이다. (47.06%, 별첨자료1 참고)
토론회 자료집에서는 유연근무 도입목적을 업무집중시간에 많은 인력을 투입하고 그렇지 않은 시간에 최소 인원을 유지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과연 우리 병원현장이 업무집중시간이 아닐 때가 언제인가? 환자들의 상태는 언제 어느 때 응급상황으로 변할지 아무도 모른다. 환자들이 잠을 자야 되는 야간에도 업무량이 많아서 낮근무와 동일하게 근무자배치를 하고 있는 현실이다.
2교대제 시행 시 오버타임, 장시간 노동으로 인해 간호사들이 더 빨리 소진되고, 안전사고가 발생할 확률이 올라가게 된다. 일부 특정병원의 12시간제 경험 간호사 의견을 일반화해서는 안된다. 12시간 근무에 쉬지도 못하는 휴게시간과 인수인계시간을 넣으면 현실에서는 14시간 근무가 될 것이다. 그리고 휴일전담제·고정근무제 등 근무시간 혹은 요일을 고정해서 일하는 경우 나머지 간호사들의 업무강도가 높아지게 된다.
단축시간제, 시간제(파트타임) 근무는 업무의 연속성이 떨어지고 환자파악도 어려워서 간호사의 업무가 액팅(간호 처치) 위주의 업무로 한정되게 된다. 결국 투약오류 등 환자 안전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간호사들의 경력단절을 막기 위해서라지만 액팅 위주의 업무로는 충분히 숙련된 양질의 간호사를 양성할 수 없다. 이는 또다시 간호 인력의 공백을 만들어 낼 것이다.
시간선택제·단축시간제 근무는 2013년 박근혜 정부가 고용률 70% 달성 일자리 창출 정책으로 이미 냈던 것이다. 지금 단축시간제로 근무하고 있는 공무원들은 시간선택제 라면서 '채용'공무원들에겐(육아 등으로 가장 분주한) 오후 근무만 하도록 하는 등 선택의 자유를 주지 않는다고 호소하고 있기도 하다. 병원 간호사들에게도 단축시간제는 이미 임신간호사에게 부여하는 제도로 나와 있지만 환자상태와 업무파악이 없는 간호사 업무는 환자안전 위험부담이 큰 병원현실에 부합하지 않아서 하루휴가로 변형 실시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지금도 대부분의 임상 간호사들이 휴게시간을 보장받을 구체적인 방안이 없는 상황이다. 강제성 없이 실행방안에 휴게시간 보장을 명시하는 것만으로는 절대 간호사들의 현실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지금 병원현장에서 간호사들은 인력부족으로 휴게시간을 가질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밥 먹을 시간과 화장실 갈 시간조차 없다. 이런 현실을 외면하고 있다. 그리고 간호사 1명이 담당해야할 환자가 많아서 8시간 내에 업무를 다 할 수 없어서 1-2시간 일찍 출근하고 1-2시간 늦게 퇴근하며 하루 2-3시간 무료노동을 하고 있는 병원현실을 외면하는 토론회이다.
이런 높은 노동 강도의 결과, 한국은 OECD 국가 중 신규 간호사 배출은 매년 2만명이 넘는 최상위를 차지하고 있고 활동 간호사수(50.2%)는 최하위이다.
이런 현실을 외면하고 유연근무제도는 업무만족도를 높이고 간호사 이직을 방지하고 재취업을 유도하여 환자에 대한 간호서비스의 품질을 제고하는 방안이라고 발표하는 것에 현장 간호사들은 매우 분노한다.
유연근무제 도입 시 실제로 발생할 수 있는 문제에 대한 대안은 없으며 미국 등의 사례만을 인용해 유연근무제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 미국, 영국 등의 선진국에 비하여 한국의 간호사 1인당 환자 수와 간호사 처우는 비교할 수 없이 열악하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다. 이런 현장조건이 다른 상황을 무시하고 단순하게 외국에서 하고 있으니 우리도 하면 된다는 식의 판단은 큰 오산이다.
외국 사례로 도입을 주장하기에 앞서 한국 간호사들의 열약한 노동환경 개선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결국 간호사 1인당 환자 수 법제화가 시행되어 간호사의 노동 강도가 줄어들고 휴무가 보장되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방법이다.
유연근무제는 결과적으로 저임금 간호사 인력으로 병원운영을 가능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다. 이는 간호사의 노동조건을 악화시키는 제도에 불과하고 병원 현장을 떠나는 간호사들을 양산시키며 결국 환자를 위험에 빠뜨린다. 신규간호사 배출을 늘리는 것도 더 많은 소모품 간호사를 만들어 내는 것에 불과하다. 이에 현장 간호사들은 매우 분노하고 있다.
또 ‘일, 가정 양립’이라고 했지만 근무형태의 차이를 두는 것은 결국 임신, 출산, 육아를 해야 하는 여성들은 가정을 돌봐야 한다는 암시가 내포되어 있으므로 또 다른 차별을 낳는 행위이다. 3교대를 하면서도 임신, 출산, 육아를 할 수 있도록 근무환경이 개선되어야 한다. 진정으로 간호사들이 ‘일 가정 양립’을 하기를 원한다면 편법이 아닌 간호사들이 늘 요구해왔던 ‘간호 인력 충원’이라는 근본적인 해결책으로 접근하기를 바란다.
행동하는 간호사회는 지난 5월 청와대로 찾아가 정부에게 간호사 인력충원과 처우개선을 요구했다. 그때 간호사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처우를 개선 하겠다고 했던 정부는 어디에 있는가? 정부와 대한간호협회는 보다 진정성 있고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기를 바라며 건강권 실현을 위한 행동하는 간호사회는 아래와 같이 요구한다.
- 간호사 유연근무제는 저임금 간호사를 만들어 병원에 공급하는 제도다. 환자와 간호사 모두 다 죽이는 간호사 근무형태 시범사업 계획안 검토 중지하라!
- 정부는 간호사 1인당 환자 수 법제화 시행하라!
- 정부는 실효성 있는 간호사 인력 산정 기준 정립하라!
- 고통 받고 있는 간호사 현실은 외면하고 병원협회요구에만 앞장선 간호협회 규탄한다!
- 간호사 유연근무제로 공공의료 역행시키는 복지부와 더불어민주당을 규탄한다!
2020년 11월 20일
건강권 실현을 위한 행동하는 간호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