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하는 간호사회는 11월 9일 황은영 간호사와 고 서지윤 간호사의 산업재해 인정을 환영한다는 입장서를 냈다.
다음은 입장서 원문이다.
건강권 실현을 위한 행동하는 간호사회는
황은영 간호사와 고 서지윤 간호사의
산업재해 인정을 환영합니다.
2018년 사망한 고 박선욱 간호사 이후 연이은 간호사들의 죽음이 있었습니다. 고 박선욱 간호사의 죽음이 도제식 신규간호사 교육의 열악함을 알려냈다면 고 서지윤 간호사의 죽음은 열악한 신규간호사의 노동환경만큼 경력간호사의 현실 또한 녹록치 않다는 것을 알려낸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서울의료원을 거쳐 동부제일병원에서 일하던 중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해 ‘적응장애’를 얻게 된 황은영 간호사 역시 신규간호사의 열악한 교육문제와 직장 내 괴롭힘 문제를 세상에 알려내기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2020년 10월, 황은영 간호사의 ‘적응장애’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37조 제1항 제2호에 따른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됨으로써 마침내 결실을 맺었습니다. 그리고 고 서지윤 간호사의 죽음 또한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 심의를 거쳐 11월 9일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되었습니다.
황은영 간호사는 서울의료원에서 신규 간호사가 수행하기 막중한 업무를 수행하면서 상당한 심리적 압박감을 느꼈고, 두 번째 병원인 동부제일병원에서의 과다한 업무, 동료들의 따돌림, 선임간호사의 모욕적 언사 등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한 정신적 충격으로 적응장애를 진단받았습니다. 이후 극심한 우울감, 자괴감, 식욕부진, 자살 충동 등의 증상을 겪으며 직장생활을 지속하기 어려워졌으며, 현재는 간호현장을 떠나 치료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서울의료원 병동에서 5년간 근무를 하였던 고 서지윤 간호사는 갑작스럽게 행정부서로 이동 후 불공정한 업무배치, 업무상 필요한 사무기기 및 책상 미제공, 무시, 언어적 모욕 등의 직장 내 괴롭힘으로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다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아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되었습니다.
직장 내 괴롭힘은 병원의 구조적인 문제와 결부됩니다. 과중한 업무, 부족한 간호인력, 불충분한 교육 등으로 인하여 많은 간호사들은 직장 내 괴롭힘에 취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한 근본적인 대책은 간호사의 노동환경 개선입니다. 간호사 1인당 환자 수를 법제화하고, 신규간호사의 교육기간을 늘릴 뿐 아니라 교육의 질을 높여야 하며, 명확한 업무 분장을 통해 간호사가 간호업무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합니다.
또한 사용자는 이러한 직장 내 괴롭힘 산재사건들이 발생하지 않도록 적극적인 예방조치를 다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직장 내 괴롭힘 사건이 발생한다면 직장 내 괴롭힘 징계 절차를 적극적으로 처리하여야 하고, 피해자를 괴롭히는 2차 가해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등 피해자의 편에 서야 합니다. 더 나아가 구조적인 이유로 발생한 직장 내 괴롭힘에 의한 질병을 산업재해로 인정하여 노동자들을 제도적으로 보호해야 합니다.
이번 황은영 간호사에 대한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의 판정 중 “신청인이 서울의료원에서 신규 간호사가 수행하기에 막중한 긴장과 책임이 부과되는 업무를 수행하면서 상당한 심리적 압박감을 느꼈을 것으로 추정되고, 서울의료원 퇴사 이후 증상의 호전을 보였다가 동부제일병원 재직 중 유사한 상황에서 상병이 재발한 것으로 보아 신청 상병은 업무와 관계가 있는 것으로 판단했다.” 라는 내용에서 두 병원의 구조적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두 간호사가 간호사로 일했던 서울의료원은 아직까지 큰 변화가 없습니다. 고 서지윤 간호사의 사망 이후 ‘서울의료원 고 서지윤 간호사 사망사건의 진상조사와 재발방지 대책 마련’을 위해 꾸려진 진상대책위는 2019년 9월 6일 발표한 조사결과에서 고 서지윤 간호사의 사망사건의 성격을 “직장 내 괴롭힘에 의한 사망이자 공공의료기관에서 벌어진 중대사건”으로 규정하였습니다. 그리고 서울의료원의 구조적 문제를 고려할 때 의료진 내에서 직장 내 괴롭힘 발생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 하에 34개의 권고안을 제시하였습니다. 진상대책위가 34개의 권고안을 제시한지 1년이 넘어가지만 그 권고안들은 지켜지고 있지 않습니다. 서울의료원은 진상대책위 권고안을 지금 당장 이행하길 바랍니다. 서울의료원에서부터 변화를 만들어 내지 않으면 이와 같은 사건은 어느 병원에서든 언제든지 또 다시 발생할 수 있습니다.
업무 과중과 보호체계 부족이 초래한 직장 내 괴롭힘은 간호직 내에 만연하고, 질병으로 고통받는 환자를 보호해야 하는 수많은 간호사들이 지금도 병들어 갑니다. 이는 간호사와 환자, 우리 사회 모두의 건강에 위해를 줍니다. 황은영 간호사와 고 서지윤 간호사의 산업재해 인정이 간호사의 열악한 노동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제도 설립의 단초가 되었으면 합니다. 또한 그동안 힘들었던 황은영 간호사와 고 서지윤 간호사의 유가족 분들에게 이번 산업재해 인정이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길 바랍니다. 건강권 실현을 위한 행동하는 간호사회는 앞으로도 가혹한 임상 현장을 견디는 간호사들과, 또 모든 노동자들과 함께 투쟁하겠습니다.
2020.11.09.
건강권 실현을 위한 행동하는 간호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