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눈물을 날리면서 뛰어들어가, 취직좀 시켜주십시요 부탁하자, 순리대로 살라고 묵직한 대답이 돌아왔다. 세상이 내맘같지 않을때, 우리는 혁명가를 부르거나 생각을 바꾸고 순종, 좋게 말해 순응의 원리를 터득하는 법이 있다. 이글은 의과학보다 인문사회과학에 가까운 글임을 다시한번 밝힌다.
대개의 종교나 사회 지도자들은 세상이 암담할때, 혁명하자고는 하지 않는다. 대신 예언자를 믿고 생각을 바꾸라고 한다. 그러나 세상을 바꾸는 것도 쉽지 않지만, 생각을 바꾸는 것도 쉽지 않은 것 또한 사실이다. 한 짐승이 달리다가 늪에 빠져, 나오려고 발부둥을 쳤지만, 발부둥을 치면칠수록 더 깊숙히 빨려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있는 것처럼 슬픈 것도 없다. 어른들은 물이 회전하며, 빠진 물체를 물속 깊숙히 빨아당기는 소에 빠졌을 데는 나오려고 힘을 빼지 않고 가만히 물에 몸을 맡기면, 어디론가 빠져나온다고 가르쳤지만, 실제 현실에서 이를 지킬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나이가 들어, 예전같지 않은 몸에 실망한 노인들. 심지어 왕년의 사회적 영향력을 과시하며 지나간 날만 그리워하는 슬픔은 자연과 사회에 생각을 쉽게 바꾸지 않은 넋두리일 뿐이다. 환경문제 또한 자연의 이치를 넘어서는 우리의 욕심이다.
하지만 우리가 자연을 이용하고 개발하는 것 또한 자연의 순리를 어긋내지 않을 수 있다. 특히 사회를 구성하고 주체인 우리가 사회를 변혁하고 바꾸는 것은 결코 순리에 어긋난 것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러나 일개인이 사회를 개혁한다고 마음을 먹는 것 자체도 사회의 순리를 어긋내는 것 아닐까?
결국 정신건강은 몸과 마음이 조화되어야하고, 세상의 이치와 나의 정신(세상과 나의 관계도 포함)이 항상 일치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편 우리 세대는 어렸을때부터 체제경쟁의 원리로서 당시 적국의 5호담당제를 비난하는 교육을 받았다. 생각만해도, 감시 속에서 산다는 것처럼 끔찍한게 없을 것이었다. 그런데 어느날 세상이 바뀌어, 공익제보자에 대한 포상금지급제도가 실시되고, 파파라치 등 정부당국이 아닌 민간이 규제를 지키는 지 감시토록 하는 제도가 생기자 많은 이들은 공산사회가 된 것같다고 말하며 반발심리를 보였다.
심지어 일부 현장에선, 범죄를 유도하여 고발하는 일까지 발생했다는 것이다. 생활안정을 위해 소급법률을 인정하지 않았다가 일부지만 인정하라하고, 객관성이 담보되지 않는 불쾌감만으로 범죄를 인정하는 등 사회불만자가 보기엔, 정말 사회는 감시와 통제사회로 나아가는 듯하다. 그러나 효율성을 위해서 변화는 계속되었다. 암행어사 제도가 정말 좋을까 생각해보지만, 마약 및 교통 등에서 잠행 단속도 인정되고 시행되었다.
그런데 실제 현재의 정치경제에 원리에 대해 공산주의라고 비판하는 이가 많은 것은, 적국이 아니라 우리도 세뇌교육을 받지 않았나 생각해볼 수 있다. 세뇌교육이 무엇인지 정의하기가 힘들지만, 세상사의 진실이 아니라 지배자에 유리하기 위해 세상사를 해석하고 이해하는 모든 정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특히 세뇌교육은 정신건강에 해롭다. 나의 생각과 세상사의 이치가 일치되는 것처럼 정신건강에 좋은 것은 없다. 마음은 청춘이라며 말을 듣지 않는 몸을 놀리다보면 몸이 망가지거나, 그렇게 안된다고 세월만 한탄하는 것 또한 그런 사례 아닐까? 내가 왕년에는 한가닥했는데, 누구하나 알아주지 않는 세상 슬프지 않을 수 없다. 중년이 된 한 학생운동권 출신을 과거에 만나본적이 있는데, 나이들어보니 남은 것이 없다고 했다. 누가 그를 기억해주는가 생각해보면 당연하다. 그런 이도 그런데, 언론에 한줄도 언급되지 않는 서민들은 어떤가, 남는 것은 돈뿐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특히 지금도 불안과 슬픔이 큰 데는 이 사회가 그런 사회일수도 있고, 사회에 대한 인식이 그릇된 것일 수 있다는 점을 되씹어보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