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연대본부는 10월 27일 간호사 요구에 동문서답하는 경사노위 해제하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다음은 성명 원문이다.
10월 27일 경사노위 보건의료위원회는 ‘국민의 건강권 보장과 지속가능한 보건의료체제 마련을 위한 보건의료위원회 공익위원 권고문’을 발표했다. 권고문에는 인구 1천명 당 3.8명인 현 임상간호사 수를 2030년까지 7.0명(2018년 OECD 국가 평균 임상간호사 수) 이상이 되도록 2022년부터 간호대학 입학정원을 확대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이미 수십년간 확대해왔던 간호대학 입학정원으로 현재의 간호인력부족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왔다는 것은 경사노위 위원들도 알고있을 것이다. 그렇지않고 이러한 대책을 내놨다면 현실상황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책상머리에서 논의한 것을 그래도 보여주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 의지가 없어서인지, 관심이 없어서인지 모르겠으나 공익위원들이 합심해 발표했다는 권고문이 이런 수준이라는 사실에 현장 간호사들의 분통이 터져 나오고 있다.
간호대학 입학정원 증원은 국민 건강권 보장과 지속가능한 보건의료체제 마련에 어떠한 대안도 될 수 없다. 지난 20여년간 무한정 늘려놓은 간호대 증원으로 간호사 수가 늘어났음에도, 인력난에 허덕이며 간호사들이 현장을 떠났다는 것이 정책의 실패를 증명한다. 한국은 간호대 증원을 꾸준히 진행해온 덕에, 2000년대 초반 20만명 정도였던 면허 간호사 수가 거의 두 배 가까이 늘어 현재 37만 명이 훌쩍 넘었고, 간호대 졸업생 수는 2017년 기준 OECD 회원 국 중 2위(10만 명 당 100명)일정도로 많다. 하지만 간호사 면허를 소지한 약 37만 명 정도의 간호사 수 중 절반도 현장에서 일하고 있지 않다(51% 유휴 간호사, 2017). OECD 회원국 평균만 봐도 현장에서 일하는 임상 간호사 수는 21위로 최하위 수준이다.
경사노위 보건의료위원회 공익위원들은 간호사들이 어째서 현장을 계속 떠나는지 모르는가? 고작 8주 내로 끝내는 불충분한 교육을 받고서 간호사 1인당 너무나 많은 환자 수를 짊어지고 물 한모금 먹을 시간과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을 정도로 바쁜 업무에 짓눌려 환자를 제대로 케어하지 못한다는 죄책감을 자연스레 가지게 되는 현실. 자신을 갈아가며 버티다 결국 이러다 죽겠어서 일을 그만두고 마는 간호사들과, 그런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야 하는 환자들에게 지속가능한 보건의료체제를 마련한답시고 간호대학 입학정원 증원을 권고문으로 내놓은 경사노위 보건의료위원회의 태도는 기만이다.
한편 경사노위 보건의료위원회는 △교대근무제 개선 등을 통해 고용친화적 노동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권고안을 냈다. 보건의료위원회는 전체회의를 통해 간호사의 일일노동시간을 늘리는 12시간 교대제를 검토한바 있다. 간호사들이 원했던 것은 기존처럼 8시간 근무를 하면서 간호사 1인당 환자수를 줄이는 것이지, 환자수를 줄이는 대신 4시간 더 일하겠다는 것이 아니었다. 이게 무슨 조삼모사같은 격의 대책이란 말인가. 간호사들이 원숭이로 보이는가? 일인당 환자수를 줄이고 간호인력 투입을 전제하지 않는 이상 교대제 개편은 노동강도 강화로 다가올 뿐이다.
경사노위는 스스로도 모순되는 권고안을 내고 있다. 장시간노동을 개선해야한다고 제시하고 있으면서 뒤로는 몰래 12시간 교대제를 논의하고 있는 것이다. 경사노위가 권고해야하는 것은 확답하지도 못할 인력충원을 위한 교대제개편이 아니라 간호간병통합서비스 전 병원 시행과 간호인력 법제화이다. 이미 너무나 많은 환자를 보며 하루 노동시간인 8시간을 넘겨서 일하는 경우가 태반인 간호사들에게 12시간 교대제는 간호사를 두 번 죽이는 일이 될 수 있다. 교대제를 변경하는 것보다 간호사 1인당 환자수를 줄이고 휴일 수를 늘려주는 것이 핵심이다.
또한 경사노위는 불합리한 임금격차를 완화하고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실현해야한다면서 임금체계개편 또한 권고하고 있다. 이는 정부가 일방적으로 추진하려했던 직무급제를 염두한 얘기라고밖에 볼 수 없다.
총체적으로 경사노위의 권고안은 실패했다. 이미 실패한 정책을 되풀이하거나 노동조건을 더욱 악화시키는 정책들이다. 야간노동 규율, 모성보호, 직장내괴롭힘 인권보호방안 등은 기존에 있는 것이거나 인권을 지키는 수준의 당연한 내용 수준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한다. 시민들이 훌륭한 보건의료체제 내에서 병원에 입원했을 때 제대로 된 간호를 받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간호대학 입학정원 확대가 아니다. 간호사 1인당 환자수를 줄일 수 있도록 배치기준을 강화하고 교육체계를 정비하는 등 노동조건의 완화가 가장 우선으로 필요하다. 현실과 전혀 동떨어진 권고문은 당장 거두고, 간호사와 시민을 위한 제대로 된 권고문을 다시 낼 것을 촉구한다.
2020.10.27.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