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더 내려놓아야 하늘을 날 수 있을까? 표현의 자유를 빌어 말하자면, 양극화가 멈춘다면 정신 질환자 수가 상당히 줄어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글은 앞에서 밝혔지만 의과학보다 인문사회학적으로 정신건강 문제를 다룬 것임을 미리 밝힌다.
사람들은 말한다. 괴로워하고 분노하고 있는 나에게 마음을 비우라고. 또 눈높이를 낮추라고 말한다. 그러나 일찌감치 강요된 포기에서 더이상 더 무엇을 포기하라는지, 알길이 없다. 고통은 욕망과 물질적 제 조건간의 차에 의해 발생한다. 욕망은 크지만, 물질적 제 조건이 안갖춰졌다면, 헛된 욕망이며 고통만 키우는 것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은 욕망이 커서 문제라기보다, 물질적 제조건이 너무 빈약해서 고통을 받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싶다. 마치, 공급과잉이라는 것이, 공급이 많아서 비롯됐다고 착각하는 것을 우리는 일부 예외를 제하고는 대다수 공급과잉은 수요의 집중과 전체적인 수요의 부족에서 발생하고 있다고 바로잡아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일부 사람들은 비교하지 말라고 하지만, 우리는 비교없인 살수가 없고 오히려 더 비교에 의해 더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하지만, 어렸을때부터 우등생인 이웃집 동창생 또는 부모 친구 자녀와 비교되는 것처럼 짜증나는 일이 없었다. 어른이 되어서도 돈을 너무 쉽게 버는 수많은 이웃집 사람들과 나의 삶은 스스로 비교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이렇게 쥐꼬리만한 돈을 만지기 위해, 영혼을 팔듯이 정성을 쏟고 있지만 이웃집사람들은 쉽게 돈도 벌고 행복한 듯한 생각이 항상 내머리속에 맴도는 것은 착각일까?
우리 교과서의 모순은 잉여생산물이 교환을 발생시켰다고 하면서도, 교환과 분업이 잉여생산물을 늘리고 생산성을 높인다는 주류경제학의 이론을 습득하고 있다. 그런 논리로 도둑은 사유재산제도 때문에 발생했다고 단정지은다면, 난 양극화가 정신질환자들을 많이 발생시켰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빈곤속에 빈곤보다, 풍요속의 빈곤이 더욱더 정신건강에 해가 될 수 있는 것도 양극화가 더 큰 불행임을 말하는 것이다. 아니 어찌보면 학력격차, 학벌격차, 빈부격차, 이른바 수리적으로 차로 표현되는 것이 커지면 커질수록 정신건강은 해롭다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마음(헛된 욕망)을 비우면 마음은 편해질 수 있다. 하지만, 얼마나 더 비워야, 아니면 포기해야 살아갈 수 있는 사회인지 생각해봐야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포기하라고 강요하고 있고, 우리는 우등생을 뽑는게 아니라, 낙오자를 가려내는 사회가 되었던것 아닐까?
문제있는 사춘기는 마음과 몸의 발달 격차때문이에 발생하다면 노인들의 정신건강은 마음과는 다른 몸, 물질적 제 조건의 격차때문에 발생한다고 할 수 있다. 지금 상당수 반정부, 반사회적인 사람들은 더 못먹고 못살았던 옛날을 그리워하고 있는 이유가 있을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