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단연은 생명과 직결된 면역항암제 옵디보·키트루다의 건강보험 급여기준 확대를 위해 한국오노·BMS와 한국MSD는 합리적인 재정분담 방안을 마련하고, 정부는 신속한 건강보험 급여화를 추진하라고 5월 14일 기자회견을 열었다.
다음은 기자회견문 원문이다.
[기자회견문] 생명과 직결된 면역항암제 옵디보·키트루다의 건강보험 급여기준 확대를 위해 한국오노·BMS와 한국MSD는 합리적인 재정분담 방안을 마련하고, 정부는 신속한 건강보험 급여화를 추진하라.
천하에 "생명"보다 귀한 것이 있을까? 의사가 존경받는 이유는 질병에 걸린 환자의 생명을 살리기 때문이다. 의사가 환자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는 치료제가 필요하다. 기존에 세상에 없던 신약을 개발하거나 기존의 약보다 효과가 더 좋고 안전하게 만드는 제약사 또한 의사 못지않게 존경받아야 마땅하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고액의 약값 때문이다.
환자의 생명을 살리거나 연장할 수 있는 신약이 개발되어 시판되고 있다면 당연히 환자는 그 신약으로 치료받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고액의 약값 때문에 대부분의 환자들은 절망한다. 최근 시판되고 있는 신약의 한 달 약값은 보통 수백만원이고, 천만원이 넘는 경우도 적지 않다. 1회 치료에 수천만원, 심지어 수억원 하는 신약도 있다. 웬만한 부자가 아니면 감당할 수 없는 살인적인 약값이다.
“유전무죄·무전유죄”(有錢無罪·無錢有罪)라는 한자성어처럼 이제 “돈이 있으면 병이 없고, 돈이 없으면 병이 있다”라는 의미의 “유전무병·무전유병”(有錢無病·無錢有病)이라는 신조어도 생길 지경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8월 9일 서울성모병원에서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대책, 일명 “문재인케어”를 발표하면서 “아픈데도 돈이 없어서 치료를 제대로 못 받는 일은 없도록 하겠다.”고 국민과 약속까지 하였다.
2001년 만성골수성백혈병 치료제 ‘글리벡’이 출시되면서 이전의 부작용이 많고, 효과가 적은 “화학항암제” 시대에서 암세포만 공격해 효과는 좋으면서 부작용이 적은 “표적항암제” 시대를 맞았다. 2015년 특정한 유전자에 반응해 일부 암환자에게만 작용하는 단점이 있지만 그 효과가 표적항암제에 비해 획기적이고, 내성 문제도 해결하고, 부작용도 적은 “면역항암제”로 암치료의 패러다임이 바뀌었다.
우리나라에서는 2016년 3월 20일 MSD의 ‘키트루다’(성분명: 펨브롤리주맙)와 ‘오노약품공업·BMS(이하, 오노·BMS)의 ‘옵디보’(성분명: 니볼루맙)가 ‘비소세포폐암’과 ‘흑색종’을 적응증으로 하는 면역항암제 시대의 문을 열었다. 죽음에 임박한 암환자라도 면역항암제 치료에 효과가 있는 경우에는 생명 연장이 가능하게 되었고, 일정기간 경과 후 면역항암제 치료를 중단해도 치료효과가 유지되는 암환자도 증가하고 있다.
최근에는 로슈의 ‘티센트릭’(성분명: 아테졸리주맙), 아스트라제네카의 ‘임핀지’(성분명: 더발루맙), BMS의 여보이(성분명: 이필리뮤맙) 등 새로운 면역항암제들이 연이어 출시되고 있다. 적응증도 ‘비소세포폐암·흑색종’에서 ‘호지킨림프종·두경부암·신장암·방광암·위암·식도암·유방암 등’으로 확대되고 있다.
현재 ‘비소세포폐암’에 ‘옵디보·키트루다·티센트릭’, ‘흑색종’에 ‘옵디보·키트루다’, ‘방광암’에 ‘티센트릭’이 건강보험 급여가 되고 있다. 두경부암과 호지킨림프종은 지난 4월 29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암질환심의위원회 문턱을 넘었지만 아직 약제급여평가위원회·건강보험공단 약가협상 등 넘어야할 산이 많이 남아있다. 그 외 모든 적응증의 면역항암제는 모두 비급여이고, 한 달 약값으로 평균 300만원~1,600만원을 지불해야 한다.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비소세포폐암·흑색종·방광암 적응증을 제외한 다른 적응증의 면역항암제로 치료를 받고 현재까지 살아있는 암환자들은 이미 수천만 원에서 1억 원이 넘는 고액의 약값을 지불하였다. 약이 이들을 살린 것이 아니라 돈이 이들을 살린 것이다. 지금까지 살아있는 환자들은 경제적 능력이 되는 부유한 환자들이거나 민간의료보험에 가입한 환자일 가능성이 높다.
많은 중산층 환자들은 빚 내고, 집 팔고, 전세금 빼서 마련한 돈으로 고액의 약값을 지불했을 것이다. 이 중 일부는 계층하락으로 차상위 의료급여나 기초생활 수급자가 되었을 것이다. 또한 고액의 약값을 지불할 경제적 능력이 되지 않은 저소득층 환자들이나 민간의료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암환자들은 신약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상당수가 사망하였을 것이다.
암으로 투병중이지만 경제적 능력이 되지 않은 저소득층 환자들이나 민간의료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환자들도 현재 건강보험료를 내고 있거나 과거에 내었던 우리나라 국민이다. 이들도 치료효과가 있지만 고액의 약값이 필요할 때는 당연히 건강보험 재정으로 신약 치료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헌법은 제10조 인간의 존엄성 존중 및 행복추구권, 제11조 평등권, 제34조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 및 질병의 사유로 생활능력이 없는 국민에 관한 국가의 보호의무, 제27조 국가의 보건의무 등에서 대한민국 국민인 암환자에게도 경제적 능력에 상관없이 헌법상 기본권인 생명과 직결된 신약 접근권을 보장받도록 하고 있고, 국가가 이를 보호하도록 하고 있기 때문이다.
표적항암제 시대에 이어 면역항암제 시대를 살고 있는 말기 암환자들의 삶의 질이 이전 화학항암제로 치료하던 때와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좋아졌다. 이제는 상당수의 말기 암환자들도 병원 병실이나 중환자실에서 고통 받으며 죽을 날만 기다리지 않는다. 가정이나 사회에서 가족들과 함께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의미 있게 여생을 마무리할 수 있게 되었다. 면역항암제 치료를 중단해도 치료효과가 유지되는 일부 암환자들은 장기 생존에 대한 기대까지 갖게 되었다.
생명과 직결된 면역항암제를 신속히 건강보험 급여화해 생사의 기로에 서 있는 암환자를 살리는 것에 재정당국과 제약사의 이해가 다를 리는 없다. 그러나 높은 약값을 받으려는 제약사와 건강보험 재정을 절약하려는 재정당국은 현재 면역항암제 건강보험 급여기준 확대를 놓고 한 치의 양보도 없는 대치상태를 이어오고 있다.
지난 4월 29일 열린 암질환심의위원회에서는 면역항암제 ‘옵디보’에 대해 호지킨림프종·두경부암 2개 적응증에 대한 건강보험 급여기준만 수용했고, 신장암·위암에 대해서는 수용하지 않았다. ‘키트루다’에 대한 비소세포폐암 1차 치료 급여기준 확대도 수용하지 않았다. 다만, 암질환심의위원회는 제약사에 대해 합리적인 재정분담 방안을 마련할 것을 주문했다.
천하에 “생명”보다 귀한 것은 없다. 제약사도 신약을 개발하고 시판하는 이유가 환자의 생명을 살리는 것이라면 재정당국이 수용할 수 있는 합리적인 재정분담 방안 마련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재정당국과 제약사의 힘겨루기에 환자가 더 이상은 피해를 보는 않도록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진다’는 말처럼 재정당국과 제약사가 서로 약가 힘겨루기를 하는 동안 고액의 면역항암제 약값을 감당하지 못한 암환자들은 생명 연장이나 완치의 기회를 잃어버리고 죽어간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2020년 5월 14일
한국환자단체연합회
(한국백혈병환우회, 한국GIST환우회, 암시민연대, 한국신장암환우회, 한국선천성심장병환우회, 한국건선협회, 한국1형당뇨병환우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