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대 l 축소

공정 댓가 기준이 없다

그렇다. 지금의 난제는 공정한 평가와 댓가에 대한 기준이 없는 데서 비롯됐다. 과거 사회주의 최대 단점이 노력과 능력에 대한 댓가의 부재로 경제하려는 의지의 부재라면, 우리는 시장경제의 이점을 최대한 살리지 못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우리는 자신이 인정받기 위한 노력을 포기하고, 남을 끌어내리려는 싸움을 전개하고 있다. 일부 기득권자들은 이 글을 보면 분배논쟁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엄연히 댓가는 성과논쟁이다. 아울러 과정을 중시한다는 민주주의는 결국 형식주의에 다름없음을 확인하고 있다. 형식적 민주주의는 제도와 법률에 의한 지배시대에 들어가 있다는 반증이다. 왜 민주주의는 성과를 중시하면 안되는지 다시 깊이 생각해보아야 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예컨데 창작활동은 결국 시간을 기준으로 보상하는 체계가 성립될 수 없다. 책상에 오래 앉아있는 학생을 명문대에 입학시키자는 주장에 불과한 것이다.


4차산업혁명시대에 맞춰서도, 기존 보상시스템은 완전히 파괴해야 한다. 창의적 아이디어와 보이지 않는 일을 감독할 수단은 많지 않다. 결국에는 성과로 판단해야 한다. 회사 내에 얼마나 오래 있느냐로, 수당을 주는 시스템으로는 미래는 없다. 시장경제와 민주주의가 서로 상통하는 것은 자유와 성과에 있다.


사람들은 간혹 착각하기를 자본의 이익을 정부가 보장해주고 있다고 하지만, 사유재산을 보장해주는 것도 국민이 하는 것이다. 국민은 서로 각자의 자유와 권리를 상호 보장해주는 게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법이 하는 것이다고 한다면, 법은 누가 만들었는지를 생각해보라. 비록 법에 의한 지배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해도, 결국은 이를 받아들이는 것은 국민이라고 보아야 한다.


쓸 데없는 정치이야기가 많이 들어갔지만, 요지는 평가와 댓가 시스템을 완전히 바꿔야 한다고 본다. 대학의 구조조정도 우리는 평가의 공정성에 심대한 의문을 가지고 있다. 심지어, 학생 학부모들에게 인기가 있는 대학을 줄이고 정치적인 논리나 힘의 논리로 그렇지 못한 대학을 유지시키려는 욕심부터 버려야 한다. 더욱이 웃기는 것은 학문의 깊이를 일부 학자들에 의해 평가하겠다고 달려드는 것부터가 웃기지 않을 수 없다.  이미 언론에 나온 부정 대학은 정부 평가와는 다른 대규모 대학에서 발생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또 입시는 정말 공정한가? 수시가 왜 4차산업혁명의 인재 선출에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지, 설명이 부족하다. 오히려 공정성만 헤치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할 수 없지 않는지 다시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이런 논쟁은 결국 많은 노력끝에 명문대를 진학했어도, 그에 대한 인정을 제대로 받을 수 없는 사회로 진화할 것이란 우려다. 서로가 서로를 부정하는 시스템이 되고 말 것이라는 것이다.


과정이 올바르면,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은 문제풀이 과정이 선배들의 방식을 그대로 따라하는 말이 아닐 것이다. 수학의 공식도 세변을 알고 삼각형 넓이를 구하는 공식을 헤론의 공식만 배웠지만, 피타고라스 정리만 안다면 누구나 삼각형 넓이 공식을 만들고 이를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은 이제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문제 풀이도 정규 교과과정에서 배우는 헤론의 공식이 없어도 거의 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차별 논쟁도, 결국 무엇이 공정한지의 논쟁의 하나일 뿐이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에 대해 공채(시험을 보고 입사)를 통해 들어간 사람들의 반발이 쏟아져 나오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남녀 평등의 첫번째도, 남녀의 구분없이 제 댓가가 지급되는데 노력을 경주해야 할 것이다. 여성에 대한 공정한 댓가를 지급하지 않고, 다른 어떤 남녀 평등의 정책은 공허한 메아리일 뿐더러, 역설적으로 남자들의 역차별 논쟁을 불러일으킨다는 것도 이제는 인식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오랜 세월전에, 소권력자들에게 임금을 적게 주는 것이 돈을 뜯어먹고 살 수 있기 때문이었다는 말이 있다. 실제 과거 쥐꼬리만한 월급에 촌지를 받아 생활을 했던 선배기자들은 많았다. 부패도 양극화에서 더 심각하게 발생한다고 할 수 있다. 내 생각에 지수가 어떻게 계산됐는지 모르지만, 우리 사회의 언론자유지수는 상당히 후퇴했다고 해야 한다. 많은 중소 언론은 자본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고 보아야 한다. 자본으로 자유롭지 못하면, 어떻게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부자나라에서 사회주의는 도래하지 않았다. 이제 철지난 얘기지만 사회주의는 가난하고 특히 양극화가 심한 나라에서 도래할 것이라고 생각해야 한다고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이제는 제4의길도 찾아야 할 때다.





이전화면맨위로

확대 l 축소